기껏 교육해 놓고 내쫓는 외국 인력 정책…단순인력만 바글바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등록 외국인은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243만 30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단기 취업이나 계절 근로, 결혼 이민, 비전문인력 등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숙련 전문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유학생(D-2 비자) 16만 3000명, 일반연수(D-4 비자)자 6만 9000명 등 총 23만 2000명이다.
국내 기술 전수받은 연수자 절반, 취업 길 막혀 불법체류자 전락
유학생은 자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설령 국내에 취업을 하려 해도 체류 비자 문제로 좌절하기 일쑤다. 특히 국내 취업을 노리고 일반연수로 온 외국인은 사실상 국내 취업 길이 막혀 있다. 일반연수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국내 상장기업이 설립하거나 기업과 연계된 전문기술 교육기관, 또는 대학 부설 전문기술 교육기관 등에서 배운 사람들이다. 국내 사업장에서 숙련공으로 일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인력이고, 한국이 생산현장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란 얘기다.
한데 일반연수자의 41.2%인 2만 6852명이 불법 체류자로 전락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일까.
고급 기술 가르치고, 외국으로 U턴 시켜…전문인력 내쫓는 셈
심지어 D-4 비자 가운데 우수 사설 교육연수기관의 연수(D-4-6) 비자로 교육받은 118명(지난해 기준)은 단 한 명도 국내 기업에 취업한 사례가 없다. D-4-6 비자는 D-4 비자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로 분류된다. 자국에서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져야 발급되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전문 학사 또는 일반 대학을 마친 사람들이 상당수다. 출발부터 어느 정도의 기술적 소양을 갖춘 인력이란 얘기다. 한데 이런 인력이 고급 기술을 전수만 하고 돌아간다. 산업현장에 투입해 고도의 숙련공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껏 교육해놓고는 다른 나라 좋은 일 시키는 꼴이다.
이러다 보니 정부의 외국인력 정책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단순 노무 제공자만 바글바글한 정책으로 전락했다. 무엇 때문일까.
외국인 전문인력 '채용 허들' 곳곳에 포진…인력수급난 부채질
채보근 전 한국이민재단 연구위원(인하대 겸임교수)은 "외국인 전문인력을 교육하는 제도는 있는데, 국내에서 취업을 전제로 양성하는, 즉 취업할 수 있는 길은 각종 허들 때문에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같은 경로로 유입되는 비숙련 외국인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채 박사는 18일 한국기술교육대와 인하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외국인력의 국내 인력화 방안' 세미나에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숙련 전문 외국인력을 국내 노동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반연수자의 취업, 특히 외국인 사설 교육기관 일반연수자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력 정책 숙련공·고급 인력 수급 위주로 재편 필요
이를 위해 "학점 관리 등의 기준을 충족한 연수생에게 체류자격 특정활동(E-7) 비자 또는 고용허가(E-9) 채용 비자로 전환할 기회를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연수과정을 이수한 뒤에는 학사 이상의 학력과 경력 등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과정이수형 자격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고용허가제를 통한 외국인력 수급 정책은 제도 시행 20년이 지났지만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예전과 달리 기술 혁신, 자동화 진전 등으로 산업현장이 노동절약형 구조로 변하면서 단순 노무인력보다 숙련 또는 준숙련 인력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의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2022)에서도 단순 노무자 미충원보다 현장 경력과 일정 수준의 기능을 갖춘 숙련인력 미충원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독일은 연수 받으면 취업할 수 있게 법까지 시행
선진국에선 외국인 전문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법까지 만든다. 독일은 2020년 3월 1일 '전문인력 이주법'을 시행했다. 이 법에 따라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뿐만 아니라 인증된 직업교육훈련을 받은 전문 외국인력이 독일어 능력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독일에서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다. 특히 24세 이하 외국인은 직업훈련원을 찾거나 공인된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6개월까지 독일에 체류가 가능하다.
채 박사는 "국내 훈련기관에서 1~2년 동안 연간 1000만원 안팎의 연수비를 자기들이 부담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익히고, 기술연수를 마친 외국인을 국내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생산가능 인력이 부족한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정책적인 실패"라고 지적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허가제에 의한 외국인력을 도입할 때 단순인력과 숙련인력을 구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유학생이나 일반연수자에 대해서는 특정체류(E-7)비자로 변경할 수 있게 하고, 여의치 않으면 고용허가(E-9)로 우선 변경한 뒤 추후 요건 충족 시 E-7으로 변경할 수 있는 방안도 부처 간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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