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떠난 직후 폭발…CNN PD, 임신한 아내와 '지옥의 피란길'
" "그들이 여기는 폭격하지 않겠죠? 호텔은 폭격하지 않겠죠? 아빠?" "
푸른빛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가자지구의 한 호텔에서 11살 아들이 이렇게 걱정할 때, CNN 소속 프로듀서(PD)인 이브라힘 다만(36)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아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아빠의 말은 며칠 뒤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호텔 맞은편 빌딩 앞에 포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호텔에 머물던 가족은 다시 가자 남쪽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16일(현지시간) CNN이 공개한 다만의 ‘피란 일기’ 중 일부다. 가자지구 북부에 거주하던 다만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 뒤 셋째를 임신한 아내와 각각 11살, 7살 난 아들과 함께 집을 버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다만은 시시각각 바뀌는 가자지구 상황을 영상으로 찍고 글로 옮겼다. 가자 출신인 다만은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철수한 2005년부터 저널리스트로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피란 일기는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본격화한 9일부터 시작한다. 당시 다만은 CNN의 현지 사무실에 일하고 있었다. 외신 언론·국제기관이 모여 있는 이른바 “조용한 지역(quiet areas)”에 있었다.
평화는 이스라엘군의 포격이 시작되면서 끝났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다만은 차로 몇 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옮겨 원격 근무를 하려 했다. 하지만 전기·수도가 끊기고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전격 봉쇄한 것이다.
포격으로 도시 곳곳에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목격한 다만은 필수품만 챙겨 가족과 함께 인근 호텔로 피했다. 호텔은 피란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처 방을 잡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와 계단 등 여기저기 웅크려 앉아있었다. 호텔에선 밤낮으로 공습과 포격 소리가 들렸다.
멀게만 느껴졌던 폭발음은 호텔에 머문 지 사흘째 되던 날, 코앞으로 다가왔다. 포탄이 호텔 맞은편 건물에 떨어졌다. 다만은 친척 중 한 명이 셔츠가 찢어지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호텔로 피신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호텔은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느꼈지만 가자지구에 안전지대는 없었다”며 “아내가 임신 2개월째인데 나쁜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만은 폭격의 충격에 뒷유리가 깨지고 바퀴가 손상된 차량에 가족을 태우고 가자지구 남쪽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그는 “호텔을 떠난 지 수 초 만에 그들(이스라엘군)은 미사일과 폭탄을 쏴 지역 전체에 큰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다만 가족은 지정된 대피 경로를 따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까지 이동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북쪽 주민 110만명에게 집을 떠나 남쪽으로 이동하라는 대피령을 내렸다.
피란길은 험난했다. 가족이 대피로 이동하는 동안 인근에서 폭발음을 듣고 했다. 다만 가족이 칸 유니스로 향하던 날, CNN은 이들과 같은 경로로 이동하던 피란민들이 갑작스러운 폭발에 죽고 다쳤다고 보도했었다. 또다른 주요 대피로인 살라 알딘 거리에선 어린이 등의 시신이 트레일러에 실린 모습이 목격됐다.
다행히 다만 가족은 안전하게 칸 유니스의 임시 거처에 도착했다. 다만처럼 가자지구 남부로 피란한 가자 북부 주민은 최소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어렵게 도착한 임시 거처엔 물과 식량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지구 남부 지역이 “급격한 의료용품과 장비 부족, 식수 고갈과 위생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몇 년째 가자지구를 취재하고 있지만 자신과 가족이 직접 전쟁에 휩쓸릴 줄 몰랐다고 밝힌 다만은 “이번 전쟁은 이전의 다른 전쟁보다 거칠고 어렵다.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된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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