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형수로 불렸던 한국 청년의 억울한 사연

장혜령 2023. 10. 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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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프리 철수 리>

[장혜령 기자]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 커넥트픽쳐스(주)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이민 역사에 관심 두게 된 몇 년 사이 한인 1세대의 삶이 주목받고 있다. 2세대는 이민 사회의 뿌리를 잊지 않고 기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게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며 선조를 향한 존경이지 싶다.

그 와중에 독특한 형식의 <프리 철수 리>가 개봉했다. 50년 전 한인 이민 사회를 들썩거리게 했지만 지금은 잊힌 '이철수 사건'을 소환하는 영화다. 불공평, 불공정한 상황, 어려움의 극복이란 보편적인 주제 때문인지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아 반향을 일으켰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 '이철수'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컷
ⓒ 커넥트픽쳐스(주)
 
1973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갱단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5일 뒤 '철수 리'라는 21살의 한국 청년이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사건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동양인 외모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백인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했기에 정확한 수사가 진행될 수 없었다. 이철수의 소년원 수감이력과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자치 체제가 맞물린 결과였다. 문화의 이해와 다양성 인식 개선에 무지했던 당시 미국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기도 했다.

이철수는 캘리포니아의 가장 폭력적인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지옥'에서 살았지만 다정함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중 이경원 기자의 기사로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교도소의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이철수는 갱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진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정당방위였지만 애초 수사가 제대로 되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당시 이철수의 사연은 한 기자의 집요한 취재를 통해 재조명됐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그렇게 이철수는 미국에서 수없이 차별받고 있던 아시아계 이민자의 상징으로 떠올라 격한 지지를 얻게 된다.

무죄를 주장하고 재심을 요구하는 구명 운동(프리 리 철수)이 타 이민 사회, 종교계까지 번지는 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각계각층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토록 바라던 재심이 열렸고 1982년 이철수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승리의 축배를 드는 순간에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다.  

아시안 아메리칸의 아이콘 '이철수'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 커넥트픽쳐스(주)
 
미국 정부는 그에게 어떤 사과와 보상도 하지 않았다. 20대를 감옥에서 보낸 이철수는 사회에 나갔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한인 이민사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떠올라 전국을 돌며 강연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스포트라이트가 꺼지자 공허함을 달래지 못했다. 마약에 손을 대 다시 교도소에 복역했다. 잃어버린 청춘을 대신해 중년만큼은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후 그는 10년간 은둔 생활을 하다 2014년 62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철수는 외로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1952년 한국전쟁 중 태어나 12살 때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 건너 왔지만 동양인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일자리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언제나 삭막했던 건 아니다. 이철수의 곁에는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변호사까지 된 친구 랑코 야마다(재미 일본인)와 집요한 취재 끝에 무죄를 이끌어 낸 이경원 기자가 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이철수를 위해 나섰다. 모두가 내 일처럼 한마음으로 그를 돕고자 했다. 

우리 주변의 또 다른 '이철수'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컷
ⓒ 커넥트픽쳐스(주)
 
<프리 철수 리>는 저널리스트 출신 한인 2세 하줄리-이성민 감독, 김수현 프로듀서가 의기투합해 제작했다. 반드시 필요한 아카이빙이라 생각한 두 감독은 사명감으로 50년 전 사건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총 6년에 걸친 제작 과정 중 저작권을 해결하는 데 만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흑백, 컬러 사진과 영상, 편지, 신문, TV 뉴스 화면, 인터뷰 영상 등을 모아 공개된 적 없는 이철수 자서전을 선보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이철수를 미화하지 않는 점이다. 잠시 등장하는 그의 어머니 또한 극심한 트라우마의 희생자였고 둘은 평범한 모자관계가 아니었다. 이철수가 10년 중 4년을 사형수로 보낸 긴 재판 과정과 이후 충격적인 사연까지 숨김없이 기록했다.

출소 후 행복한 일상을 되찾는 과정에서 멈추지 않았다. 인생이란 찬란한 순간이 끝나도 여전히 계속되기에 일부를 담아 부풀리기보다 전체를 담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인물의 혼란과 실수, 실패를 모두 담아 존엄성을 지키려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극영화에 가까운 편집이 인상적이다. 속도감과 아이디어가 살아 있으며, 감각적인 구성이 특별함의 품격을 높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의미있는 건 여전히 '이철수 사건'은 사회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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