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석학 "삼성, 너무많은 분야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초점"(종합)

문채석 2023. 10. 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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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 아닌 해야 하는 일 고민할 때"
'프랑크푸르트 삼성→피렌체 삼성' 변화 주문도
"패스트 팔로워→퍼스트 무버되려면 '창조'해야"

세계 최고 경영철학 석학이 "삼성은 너무 많은 분야에 진출하려 하기보다 무엇에 초점을 맞출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18일 조언했다.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이날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3주기(오는 25일)를 맞아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30년 전인 1993년 이 선대회장이 제품 물량을 늘리기보다 품질을 높여야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있다며 역설한 '신경영 선언'을 기념해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에서 열렸다. 김재구 경영학회장,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을 비롯해 국내외 석학, 삼성 관계사 임직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김황식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이 선대회장이 삼성을 이끈 9659일(29년 169일)간 누구도 가지 않은 혁신의 길을 걸은 이 선대회장 추모를 전한다"며 "신경영 정신을 재조명해 한국 기업 미래 준비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명예교수가 18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에서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초청 연사들은 삼성 신경영을 기술, 전략, 인재, 상생, 미래세대, 신흥국에 주는 함의 등 6가지 관점을 분석하고 30년 전 신경영 선언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학술대회 1부에서는 마틴 명예교수와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가 각각 '이건희 경영학 본질은 무엇인가'와 'KH 유산의 의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2부에서는 스콧 스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기타 맥 그래서 컬럼비아대 교수, 패트릭 라이트 사우스캐롤라이나래 교수, 김태완 카네기멜런대 경영윤리 교수 등이 강연했다.

마틴 명예교수가 18일 오전 이건희 선대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Q&A) 전 대기하는 모습.[사진=문채석 기자]

마틴 명예교수는 이 선대회장이 전략 이론가(Strategy Theorist)이자 통합적 사상가(Integrative Thinker)로서의 면모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사물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대답만 해(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식 사고방식이 아니라 사물과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삼성을 경영했다고 했다. 정답 지향, 합의 추구, 여러 대안 중 하나만 정하는 의사결정 등 '전통 경영'의 틀을 깼다고 했다.

마틴 명예교수는 기조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Q&A) 시간에 '대전환 시대 삼성은 인재 외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둬야 하냐'는 질문에 "삼성 조직이 더 커질수록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너무 많은 분야에 진출하려 하기보다(할 수 있는가) 무엇에 초점을 맞출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회사)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며 "삼성도 이런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작년 8월12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선대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중섭 작품 104점 가운데 80여 점, 기존에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11점 중 10점을 합쳐 총 90여 점이 선보인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김상근 교수는 문화 등 비(非)경영 분야에서 이 선대회장 사회 환원이 한국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소개했다.

김 교수는 세금을 많이 낸 기업인은 '기업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한 기업인은 '대기업 리더', 선의를 바탕으로 자선가로서의 면모까지 갖추면 '시대 정신'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그러면서 "이 선대회장은 이탈리아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남긴 한국의 시대 정신"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 선대회장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 '신경영 30년 역사'가 시작됐다고 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양 경영'에서 '질(質) 경영'을 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이후 창조·디자인·마하·글로벌 경영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김 교수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은 우수 인재를 확보해 '초격차'를 지향하는 일사불란한 조직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기업'에서 '2023년 피렌체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김 교수는 조언했다.

그는 기조강연 후 Q&A에서 '1993년 프랑크푸르트 기업과 2023년 피렌체 기업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에 "삼성은 1993년 독일하면 떠오르는 공작기계, 규칙처럼 (다른 기업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였지만 이제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며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중세 1000년 역사를 단축하고 근대를 앞당긴 피렌체처럼 퍼스트 무버로 가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이 선대회장이 진돗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사진출처=연합뉴스]

삼성은 지난달 말 이 선대회장 주도 안내견학교 사업을 재조명해 3주기를 추모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재계는 3주기와 회장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삼성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한다.

19일엔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이 선대회장 추모 음악회가 열린다. 최연소 삼성 호암상 수상자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선대회장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삼성 총수 일가 참석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사장단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경기도 용인 선영에서 이 선대회장 3주기 추도식을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다. 삼성 전·현직 사장들이 참석해 고인을 기릴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1주기에는 수원 선영에서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추도식을 치렀다. 작년 2주기에는 유족 외에 삼성 경영진 300여명과 김승연 한화 회장이 선영을 찾아 고인을 기렸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7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삼성은 이 회장 취임 1주년 행사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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