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죽음은 삶을…상실은 기억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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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세미(박혜수)는 동급생 하은(김시은)을 좋아한다.
"세미는 마음 깊숙한 곳에 큰 사랑이 있다. 여느 10대처럼 실수를 몇 번 저지를 뿐이다. 사실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상실을 위로하는 경우가 그렇다. 몇 마디 말로 달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세미가 개를 찾아 돌아다니며 내면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처럼. 더 성장해야 할 인물, 다시 말해 더 살아가야 할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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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 감독 사랑의 본질 입체적 이해에 주안점
더 성장해야 할, 더 살아가야 할 인물로 그려
세월호 희생자 향한 추모와 애정 담아
고교생 세미(박혜수)는 동급생 하은(김시은)을 좋아한다. 마음을 계속 표현하려 애쓴다. 그러나 거듭된 일방통행으로 오해를 쌓아 상처를 입는다. 노래방에서 빅마마의 '체념'을 부르며 자신을 위로하기에 이른다. "행복했어! 너와의 시간들 / 아마도 너는 힘들었겠지 / 너의 마음을 몰랐던 건 아니야 / 나도 느꼈었지만…."
영화 '너와 나'는 엇갈리는 상황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예컨대 세미는 집에서 앵무새를 키운다. 대답을 강요하나 어떤 말도 듣지 못한다. 모든 일에 자기중심적인 건 아니다. 죽어 있는 새를 주워 양지가 바른 곳에 묻어주고, 실종된 개를 찾아주려고 분주히 뛰어다닌다. 누구보다 착하고 순박하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툴 뿐이다.
조현철 감독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 주안점을 둔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이기도 하다. 세미는 하은이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에 망각한다. 수학여행을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있다.
"세미야, 진짜 미안한데 이번에는 그냥 수학여행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솔직히 하루 전에 이러는 게 말도 안 되고, 정신도 없고, 사고가 정리된 것도 아니고. 아빠한테 완전히 허락받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너는 이렇게 계속 네 생각만 하잖아." "아니, 이게 왜 내 생각만 하는 거야? 상황이 안 좋으니까, 그냥 나 힘든 것 좀 알아달라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는 이상한 꿈 꾸고 하니까 혼자 가는 것도 싫다고 했고, 너랑 같이 가서 같이 재밌게 놀려고 하는데." "너 마음 무슨 마음인지 충분히 아는데, 이거는 아니지. (…) 넌 왜 계속 네 생각만 하는데!"
잘잘못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조 감독도 "완벽함, 선함 등으로 느껴질 법한 평면성을 지양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세미는 마음 깊숙한 곳에 큰 사랑이 있다. 여느 10대처럼 실수를 몇 번 저지를 뿐이다. 사실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상실을 위로하는 경우가 그렇다. 몇 마디 말로 달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세미가 개를 찾아 돌아다니며 내면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처럼…. 더 성장해야 할 인물, 다시 말해 더 살아가야 할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다."
차분하고 고상한 의도는 일상적 연기로 나타난다. 박혜수, 김시은 등이 소소한 갈등을 청정한 얼굴과 순수한 언어로 보여준다. 단순히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와 나'에는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애정이 담겨 있다. '세월호'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수학여행, 안산 등 유추할 만한 단서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 감독은 일상을 침투한 죽음의 기운마저 평범하게 묘사한다. 장례식장 앞에서 상주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대화하고, 세미 아랫집 아주머니는 복도에서 지방(紙榜)을 태운다. 조 감독은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다가오지 않을 일처럼 인식한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하지만 반드시 일어날 일이다. 주변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고 말했다.
세미와 하은의 갈등이 사랑으로 일단락되면서 일상으로 표면화된 삶과 죽음은 하나로 이어진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열쇠가 결국 사랑인 셈이다. 조 감독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느끼려면 당연히 관심부터 가져야 한다. 그 동력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정 종교에 기댄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진화생물학을 통한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에 가깝다. 세계적 과학저술가 도리언 세이건이 저서 '린 마굴리스'에서 어머니 린 마굴리스(1935~2011)에게 바친 진화론적 추도사대로….
"우리 생각과 다르게 우리는 동물이기도 하고, 박테리아이기도 하고, 다른 미생물이기도 해. 박테리아는 비타민 생성을 도와주고, 우리 몸 안과 겉에 살지. 가끔 우리를 아프게 하는 박테리아도 있지만, 이들이 모여서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탄생시키기도 해. (…) 박테리아와 다양한 형태의 생명이 모여서 만들어진 생물체지. 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너희도 마찬가지란다. 우리는 우리 몸 안의 것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부를 이루고 있는 외부의 것들과도 연결되어 있어. 그러니까 기억하렴. 하늘나라에 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슬퍼질 때면, 할머니는 물과 흙으로 돌아간 것이고, 할머니의 기억이 너희의 일부가 되었듯이 너희가 할머니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하렴. 할머니는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실 것이라고 말이야."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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