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통제와 폭력을 요구해 온 교육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투고하는 글입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교사인 조영선(연대하는교사잡것들)씨가 작성했습니다. <기자말>
[조영선(연대하는교사잡것들)]
중등 교사로 교직 생활을 처음 할 때부터 계속 따라다녔던 주문이 있었다. '교사는 교실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악'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사전에 찾아 보니 '손안에 잡아 쥔다는 뜻으로,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다, 이런 자의성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바로 '교권'이었다.
정부가 교사의 체벌을 허용해 온 것도 이처럼 교사가 교실을 장악하고 학생들을 자의적인 통제하에 두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아동학대 교사 면책' 같은 경우도 아동학대로 보는 행위 중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 달라는 것인데, 그 정당성을 판단할 기준에 관해서는 누구도 논하지 않는다. 그저 교사가 하는 교육활동은 다 옳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 교사에게 기대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닭다리(자료사진). |
ⓒ unsplash |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은 '매점에서 파는 닭다리를 팔지 말자'는 어느 교사의 제안이었다.
우리 학교 매점은 협동조합 매점으로 그나마 학생들의 취향에 맞는 품목이 많아 인기가 좋은 편이다. 특히 데워 먹을 수 있는 밥과 닭고기 등이 있어서 학생들이 좋아하는데 어느 날 교사가 데워먹는 음식이 너무 냄새가 나니 매점에서 아예 팔지 못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말을 부장 회의에서 꺼냈다. 요지는 학생들이 냄새가 빠지게 복도에서 음식을 먹고 오느라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늦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해결책이 아예 팔지 못하게하는 것이라니, 내 귀를 의심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너무나 진지하게 '팔게 할까, 못 팔게 할까'를 의논하는 회의 풍경이었다. 나는 그 논의 자체가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비굴하게 "학생들이 사실 닭다리 먹으러 학교를 올 수도 있다"라며 학생들에게 수업에 늦지 말라고 얘기하는 게 중요하지, 해당 음식 자체를 팔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교장이 훈화를 잘하자고 마무리해 닭다리는 퇴출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닭다리가 인권이냐'고 묻겠지만, 사실 어떤 규칙에 대해 논의를 하는 데 있어 다소간의 문제가 생긴다고 해 아예 '제공되던 것 일체를 철회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학교 말고 또 있을까? 이러한 논의 자체가 가능한 것은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를 묵인하거나 장려해서라도 수업 시간에는 늦게 들어와서는 안 된다, 교사의 편의를 위해 학생을 통제해도 되고 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 2023년 8월 24일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안을 비판하는 교육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
ⓒ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
지난 8월 17일 교육부가 발표해서 학교 현장에서 실행 중인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아래 생활지도 고시)'의 일부인 '수업 중 격리'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격리가 된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방해되는 학생을 '처리해 버리는' 방식이 국가적으로 추진되고 교사단체들도 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퇴출되는 모습을 학생들이 봐야 교실 내 질서가 유지된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생활지도 고시의 내용을 학교 규칙에 반영하도록 교칙 등을 개정하라고 명시된 기한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공문에는 학교 교칙이 바뀌지 않았어도 고시의 내용을 우선해서 조치하라는 내용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실제 학생을 통제하는 '물리적 제지'나 '수업 중 격리'가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나 합의된 기준 없이도 집행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교육부는 카드뉴스까지 만들어 공문으로 보냈다. 이 모든 것이 교육부가 생활지도 고시의 내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첫 공식 의견 청취 자리였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 마련을 위한 포럼이 있었던 8월 8일 이후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렇게 학교 규칙을 민주적으로 제·개정하는 과정이나 절차마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 학교 규칙에 근거한 지도를 모두 아동학대 행위로 보지않도록 면책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교사의 행위를 건들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 이런 전근대적인 접근 방식은 사실상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은 교육의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닐뿐더러, 교실의 질서를 위해 언제든 지긋이 밟아줄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한 것이다.
21세기에 사실상 교사에게 '물리적 제지'라는 폭력을 정부가 강요하는 야만이 펼쳐지고 있다. 그 명분은 마치 교사들을 위해서라고 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교실을, 학생들을 교사들이 장악하고 통제해야만 한다는 의무의 요구다. 체벌은 시작부터 그랬지만 현재도 국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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