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이스라엘 가기 직전 큰 악재…가자병원 폭발 500명 사망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이 중대 분기점을 맞는 시점에서 정치적ㆍ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스라엘 방문을 결정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출발하기 전부터 큰 악재를 만났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심가 아랍병원에서 17일(현지시간) 대규모 폭발로 수백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로켓 공격 탓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이 아니라 이슬라믹 지하드의 소행이라고 하면서 정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 방문 직전에 터진 이번 일로 요르단ㆍ이집트ㆍ팔레스타인과의 정상회담이 연기되는 등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외교 구상이 차질을 빚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해 이스라엘 방문길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국가를 직접 방문하는 것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이스라엘 방문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브렛 맥거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ㆍ북아프리카조정관 등 외교안보 참모진과 공보 담당 참모진 등이 동행했다.
“바이든, 이스라엘에 ‘어려운 질문’ 할 것”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우선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ㆍ연대를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에어포스 기내 브리핑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소규모로 제한된 양자 회담을 한 뒤 이후 범위를 넓혀 이스라엘 전시 내각과 회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전쟁 목표와 작전계획 등을 포괄적으로 브리핑을 받을 예정이다. 커비 조정관은 “몇 가지 어려운 질문을 할 것”이라며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질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예고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측으로부터 향후 전력 구상을 듣고 필요한 군사적 지원 방안을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미 국방부는 최신예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의 중동ㆍ유럽 배치를 연장하고 중동 안보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병력 약 2000명에 ‘준비태세’ 명령을 내렸다.
또 참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이란과 그 대리 세력으로 지목되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전쟁 개입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는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를 두고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이번 이스라엘 방문에서 하마스 소탕을 위한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지구 진입에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장기화와 이로 인한 민간인 희생 등에 대한 우려를 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질 석방, 봉쇄 조치로 식량ㆍ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가자지구 민간인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 가자지구 남쪽 이집트 접경지역 육상 통로(라파 검문소) 개방 문제 등도 협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 반격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지지 의사를 밝히는 한편 민간인 안전ㆍ보호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에는 작전 준비 시간을, 가자지구 주민들에게는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라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가자병원 폭발에 요르단 방문 연기
하지만 방문길에 오르기 전 터진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 참사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려던 바이든 대통령의 스텝이 꼬이게 됐다. 18일 이스라엘 방문 이후 곧바로 요르단을 찾아 압둘라 2세 국왕,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나려 했지만 가자지구 병원 폭발로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바이든 대통령 출발 직전 회동이 연기됐다. 다만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아바스 수반, 알시시 대통령과 통화할 계획이라고 커비 조정관이 말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지구 폭발 사고와 관련해 설리번 보좌관 등 국가안보팀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가자지구에 체류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통화하고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네타냐후 총리와도 통화했다고 한다. 백악관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은 압둘라 2세 국왕과 상의한 결과 요르단 방문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별도 성명을 내고 “끔찍한 인명 손실에 분노하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이번 비극으로 숨지거나 다친 환자, 의료진 및 기타 무고한 사람들에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시험대 선 바이든의 중동 외교
하마스와 가자지구 보건부는 병원 폭발로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며 이스라엘군의 공습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끔찍한 전쟁 학살”이라며 사흘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작전 시스템 분석 결과 가자지구의 테러리스트들이 로켓을 쐈고 알아흘리 병원 근처를 지나간 것으로 나타났다”며 “가자지구 병원을 강타한 로켓 발사 실패에 이슬람 지하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참사 원인을 둘러싸고 양측 주장이 엇갈리며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이스라엘 지지를 표명하면서, 동시에 확전을 억제하기 위한 줄타기 외교 해법을 모색하던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이 큰 난제를 맞게 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이스라엘 방문은 내년 11월 대선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종의 승부수라는 분석도 있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정ㆍ재계에 큰 입김을 행사하는 유대계 영향력을 감안할 때 바이든 대통령이 안전ㆍ경호상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 방문길에 오른 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대계를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되는 측면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번 이스라엘 방문으로 정치적ㆍ외교적 리더십의 시험대에 선 형국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가시적인 외교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무능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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