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北식당 갔다가 포섭당했다…충성자금 댄 IT 사업가

이찬규 2023. 10. 1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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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있는 북한식당은 음식뿐만 아니라 공연 등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A씨는 이에 매료되어 매달 북한식당을 출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

정부와 공공기관에 IT 프로그램을 납품·유지보수하는 업체 대표인 A씨(52)는 여느 사업가와 다르지 않았다. 주력 사업인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계약을 조금이라도 따내기 위해 분주한 A씨였다. A씨가 달라진 건 2016년 동남이 일대의 북한식당을 호기심에 방문하기 시작한 이후다.

A씨가 방문한 북한식당은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공연도 하며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이에 매료된 A씨는 북한식당을 매달 출입하게 됐고 급기야 북한을 위한 충성자금까지 지불하게 됐다. A씨가 7년 동안 정찰총국 간부이자 북한식당의 부사장 B씨에게 포섭당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과장 이연재)는 국가보안법 및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A씨를 지난 13일 불구속 송치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4월 A씨 주거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A씨를 출국금지했다.

A씨가 B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16년 미얀마였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부터 위챗 등을 사용하며 B씨와의 연락망을 구축했고,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바꿔가며 보안을 철저히 했다. A씨는 미얀마, 라오스, 중국으로 식당 위치가 바뀌었음에도 매달 식당을 들락거리며 북한 인사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갔다. 북한 기념일인 조선로동당 창건일에 꽃다발 들고 식당을 찾거나 북한 대사관 측과 동시간대에 식당에 머문 정황도 파악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A씨는 북한 기념일에 꽃을 산 뒤, 북한 식당을 찾아갔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

북한식당의 중국 단둥 이전, 국가계획 차질 문제, 여성 종업원 신체 사이즈 등 식당 내부 사정까지 알 정도로 A씨와 B씨의 친분은 두터워졌다. A씨는 “나는 북한식당의 작은 사장”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친분이 어느 정도 쌓이자 A씨에게 생필품 지급을 부탁했는데 점차 그 항목이 늘어났다.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인 북한식당은 국가계획에 따라 북한에 송금해야하는 충성자금을 A씨에게 대납해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총 4800달러를 충성자금 명목으로 B씨에게 전달했고 이중 일부가 실제 북한으로 흘러간 정황이 드러났다. 북한식당 운영에 필요한 의류, 악기와 향정신성의약품 등 20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건네기도 했다.

올해 초 A씨는 북한 측으로부터 해외 여론 공작 임무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미얀마 정부가 B씨에게 반정부 세력의 인터넷 사이트를 차단해달라고 의뢰했고, B씨가 A씨에게 은밀히 지령을 전달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지만, 외교 문제로 인해 임무는 무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A씨는 북한식당 출입, 통신 연락, 금품전달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식당 종업원과 연인관계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A씨의 금품전달을 도운 지인 2명에 대해서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 북한 식당은 공작기관의 거점이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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