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보낸 '컨테이너 1000개' 무기…진짜 위협은 푸틴의 '보답'

정진우 2023. 10. 18. 11: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김정은의 방러를 전후로 약 2개월 간 북한은 최소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무기와 군수품을 러시아에 보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로 북한이 탄약과 포탄을 포함한 각종 전쟁 물자를 러시아에 제공했다는 의혹이 구체적 정황 증거들을 통해 기정사실화했다. 포탄으로 환산할 경우 수십만 발에 달하는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북한발(發) 무기 지원은 중·저강도의 대치 국면이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구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이 북·러 무기거래 사실을 입증할 위성 사진 등의 정황 증거를 전격 공개하며 경고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는 이유다.

다만 북핵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무기를 제공받은 러시아가 보일 다음 행보가 보다 큰 위협 요소다. 북한이 한반도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을 감수하고 살과 뼈에 해당하는 포탄·탄약 재고를 넘겨준 것은 러시아 역시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할 것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과 뼈 내어준 北, 노림수는


북한은 지난달 전술핵공격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을 공개했다. 뉴스1
러시아가 북한의 핵 무력을 완성 단계에 올려놓을 핵심 첨단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북핵 위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게 된다. 북한은 이미 올해에만 두 차례에 걸쳐 고체 연료를 활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지난달엔 낡고 오래된 선체를 무리하게 짜깁기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수중에서 발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술핵공격잠수함을 건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와 한·미·일 등 각국의 독자 제재로 팔다리가 잘린 상태에서 북한이 그간 일궈낸 핵발전 수준이 이 정도다. 만일 러시아가 북한에 체계적이고 정례적인 핵 기술 협력을 결심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장하는 핵 무력 완성은 허튼 말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성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17일(현지시간)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러시아가 무기와 군수품의 대가로 북한에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지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치밀하게 계획된 북·러 탄약 거래


지난 7월 북한을 방문한 세르기에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무장장비전시회장을 찾았다. 연합뉴스
지난 8월부터 약 2개월간 이어진 북·러 무기 거래는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계획된 결과로 보인다. 북한의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7월27일) 70주년 참석으로 포장됐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지난 7월 25~27일 방북은 무기 거래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김정은은 이례적으로 쇼이구 국방장관과 연이틀 동행했고, 그 과정에서 방산 영업을 하듯 무장장비전시회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8월 초엔 러시아 측 실무진이 추가 방북해 구체적인 포탄·탄약 비축량 등의 거래 조건을 검토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8월 중순 마치 거래 물품의 샘플을 배송하듯 러시아 선박이 북한 나진항과 러시아 두나이항을 오갔다. 지난달 13일 북·러 정상회담 전날엔 러시아 국적 선박인 앙가라호가 약 300개의 북한발 컨테이너를 실은 채 러시아 항구에 정박한 모습이 포착됐다.북·러 간 상호 거래 조건이 맞아떨어지며 포탄·탄약을 포함한 북한의 대규모 무기 제공이 이뤄진 셈이다.


'무기거래'에 집중된 시선, 진짜 위협은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3일 위성사진 분석 정보를 토대로 북한이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무기와 군수품을 러시아에 제공했다 밝혔다. 다만 이후 러시아가 북한에 무엇을 대가로 제공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북·러 간 컨테이너 이동을 포함한 무기 거래 이후 러시아의 후속 움직임에 대해선 구체적 발표도, 정황 증거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미 백악관 역시 지난 13일 북·러 무기 거래 정황이 담긴 위성 사진을 공개하면서도 러시아 측의 후속 움직임에 대해선 "북한이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 탄도미사일 생산 장비, 첨단 기술을 포함한 군사적 지원을 러시아로부터 모색하고 있다고 평가한다"고만 밝혔다.

18~19일 예정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방북 일정은 북한이 러시아 측에 내민 청구서의 주요 내용을 협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브로프 장관이 지난달 방북 계획을 공개하며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합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 것은 결국 무기 제공 이후 북·러 간 군사 협력 사안을 논의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전투기·지대공미사일·장갑차는 물론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첨단기술 등의 군사 지원까지 확보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 기술'로 포장된 북·러 미사일 협력


두 차례에 걸쳐 군사정찰위성 시험발사에 실패한 북한은 이달 중 세 번째 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북·러 간 첨단기술 협력 중 최우선 순위로 거론되는 분야는 우주 기술이다. 북한이 세 번째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공언한 시점이 임박한 데다, 푸틴 대통령 역시 지난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지원할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곳(우주기지)에 왔다"고 답하는 등 우주 기술 분야의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에 사용하는 발사체는 탄두부 탑재체만 바꾸면 언제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 가능하단 점에서 북·러 인공위성 관련 협력은 탄도미사일 기술 협력과 다름없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북·러 간 외교 협력 역시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무대 등 국제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북핵 문제를 옹호한다면 사실상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해주는 효과로 이어진다. 북한으로선 러시아를 뒷배 삼아 미국과 국제사회에 압박에 맞서 '버티기 모드'를 이어나갈 핵심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외교 소식통은 "컨테이너를 활용한 북·러 간 무기 거래는 그 행태를 낱낱이 포착할 수 있지만 군사 기술 이전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한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만큼 다양한 정보자산을 총동원해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에 어떤 군사·기술적 협력에 나설지 아직 구체적인 내용들이 포착되진 않았지만, 상황이 북·러의 의도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