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 안에 이토록 다양한 도시라니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북쪽으로 향할수록 풍경은 달라졌습니다. 산과 초원이 펼쳐진 풍경이었습니다. 분명 이탈리아 남부와는 다른 색이었습니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쇼핑몰 |
ⓒ Widerstand |
인구수로는 로마에 밀리지만, 밀라노의 경제력은 결코 로마에 밀리지 않습니다. 사실 오히려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주는 로마가 속한 라치오 주를 압도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죠. 롬바르디아 주의 GDP는 4,687억 유로에 달하지만, 라치오 주의 GDP는 2,000억 유로 수준입니다.
▲ 밀라노의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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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밀라노는 "메디올라눔(Mediolanum)"이라고 불렸습니다. 로마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북쪽으로 향하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죠.
메디올라눔은 한때 서로마의 수도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286년,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거처를 로마에서 메디올라눔으로 옮깁니다. 당시 이미 로마는 '군인 황제 시대'라는 혼란을 겪고 있었거든요. 49년 동안 황제 자리를 거쳐간 사람만 26명에 달하는 내전과 분란의 시대였습니다.
강성한 귀족 세력의 힘을 피해 이러한 내분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가 수도의 이전이었습니다. 물론 로마 제국의 중심지는 여전히 로마였지만, 황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는 이제 밀라노로 그 현장을 옮기게 된 것이죠.
▲ 스포르체스코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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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로마를 모두 차지한 콘스탄티누스는, 이듬해 동방의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전란의 피해를 서서히 회복한 로마는 다시 서로마의 중심지 자리를 되찾았죠. 하지만 로마 제국의 기능은 이미 동방으로 옮겨간 뒤였습니다. 100여 년이 지나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 두오모 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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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다양한 국가가 이 도시를 노리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들어선 여러 지방 정권이 밀라노를 두고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여기에 힘을 키워나가던 프랑스나 오스트리아도 한때 밀라노를 차지하기도 했죠.
▲ 밀라노 대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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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부와 자유는 정치적 격동과는 큰 관련이 없었습니다. 밀라노가 정치적 중심지의 지위를 상실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이후 밀라노는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죠. 통일 과정에서는 이웃 사르데냐 왕국에 이른 시기 병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밀라노의 산업과 경제력은 이어졌습니다.
▲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
ⓒ Widerstand |
물가도 많이 올랐습니다. 대중교통 요금은 북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오르더군요. 결국 밀라노에 도착하니 지하철 요금이 나폴리의 두 배가 되었습니다.
나폴리뿐 아닙니다. 오래된 도시 구조가 그대로 남은 로마와도 달랐습니다. 작은 관광 도시가 된 피렌체와도 달랐죠. 섬을 연결해 만든 베네치아와도 이 내륙의 도시는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 미켈란젤로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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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탈리아의 본질이란 그렇습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다양한 지역을 있는 그대로 묶어낸 것이 현대의 이탈리아입니다. 이들의 화학적 결합과 단일한 국가로의 변화는 현대 이탈리아가 갈 방향도 아닙니다.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역사적 경험은 골목 곳곳에 남아 도시의 유산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다만 이탈리아는 우리 세계에 하나의 의문을 던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토록 다양한 지역과, 도시와,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을지. 그 실험과 결과를 전달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현대 이탈리아 정치는 그 의문에 답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 능력을 갖고 있을까요? 이탈리아는 나폴리에도, 밀라노에도 만족스러운 조국이 될 수 있을까요? 나폴리의 낡은 버스 안에서도, 밀라노의 화려한 도심에서도, 그 의문은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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