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값을 헤아릴 수 없는 100원짜리 장난감들

박유정 2023. 10. 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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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선생님의 욕과 잊지 못할 문방구 아줌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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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정 기자]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 되었을 때,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신 20대 후반 남자 선생님께서 우리 반을 맡아주셨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별활동을 많이 시켰고, 특별활동 시간에 피구를 시켜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나이가 많지 않고 친구같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인기가 많았던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4학년 정도가 되면 아이들이 욕에 재미를 느낀다. 처음으로 욕을 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게 아주 재밌는 얘기라는 듯 모두가 들으며 웃곤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습관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이었다.

뭐가 뜻대로 안 되셨을 때, "아, 씨*" 하며 욕을 하곤했다. 그때마다 반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선생님도 머쓱하게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며 큰 문제없이 넘어가지고는 했다. 그때는 모두가 웃으니, 나도 그게 꼭 웃긴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웃긴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고 방학 때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학교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기만 했다면 내가 지금까지 선생님을 그렇게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가장 선명한 기억은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금요일이었다.

우리는 모둠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각 모둠별로 풀과 가위, 색종이 등을 바구니에 담아 교실 한 편에 나란히 놓아 두었었다. 그날은 아이들이 많이 산만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잘 못 알아듣고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교실 한쪽에서는 자기네들끼리 떠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다 말고 교실 한쪽으로 가시더니 욕을 하며, 우리의 모둠 바구니들을 손으로 밀고 또 던졌다. 안에 담긴 풀과 가위, 색종이들이 모두 흩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조그만 물건들 밖에 없었는데도, 책상의 철제 부분이나 바닥에 부딪히는 물건과 바구니는 큰  소리를 냈다. 선생님은 그래도 화를 참지 못하고 교실 뒷문으로 나가셨다.

그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주섬주섬 일어나 바구니를 원상복구해서 제자리에 돌려놓고 무릎에 손을 얹고 얌전히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이미 종례를 끝내고 지나가는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반을 쳐다보고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는 아이도 하나 없었다.

기괴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화난 선생님께 용서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얼마 후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 청소 당번들은 청소 하고 가고 나머지는 돌아가도 좋다며 종례를 시켜주셨다. 평소보다 30분은 늦은 종례였다.

터벅터벅 걸어나와 교문 밖으로 나왔을 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갑자기 무서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래서 평소라면 참새방앗간마냥 잘 찾아가던 문방구 앞에 오고나서도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문구점 뽑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 뽑기 뽑기 머신
ⓒ 박유정
 
찐득이, 팽이, 작은 열쇠고리들이 나오는 뽑기통에 백 원을 넣고 레버를 돌렸다. 덜컹 하는 무게감과 함께 뽑기 캡슐 하나가 굴러나왔다. 발로 밟아 캡슐을 깨고 안을 보니, 눈이 튀어나오는 중국산 고무 인형이 있었다. 너무 못생겨서 눈물이 났다. 내가 그렇게 울고 있으니 문방구에서 아주머니가 놀라서 나오셔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끅끅 울면서 "인형이 못생겼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일까 싶지만 아주머니는 나를 문구점 안으로 데려와서 문구점에 딸린 조그만 방에 나를 앉히고 컵떡볶이와 100원짜리 찐득이와 팽이를 가져다 주셨다. 주머니에 단돈 백 원(그나마도 이젠 뽑기를 해서 없다) 밖에 없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주머니께 돈이 없다고 급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말하며 앉아 있다가 가라고 해주셨다. 이전에도 나를 도와주신 적 있는 얼마나 감사한 분인지... 그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관련 기사: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 안다, 떠버기 https://omn.kr/25mqi ).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 수 있고, 또 쉽게 회복하거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선생님이 화가 나셨을 때 물건을 던지기 전에 차라리 먼저 밖으로 나가셨다면 어땠을까. 욕을 하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공포감에 물건을 치우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이 나쁜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셨고, 재밌고 좋은 분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같은 상황이 닥쳐도 나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이였기에 순간 덜컹 흔들렸다.
 
▲ 문구점의 조그만 장난감들 문방구표 장난감들과 사장님의 운동기구
ⓒ 박유정
 
그리고 나는 아주머니의 도합 1000원 정도의 위로에 크게 치유받았다. 오늘의 고전문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100원짜리 장난감들이었다. 이 100원짜리 찐득이, 100원짜리 팽이는 어른이 된 나에게, 작은 일에 상처받고 작은 일에 치유받는 어린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기에 그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것을 내게 가르쳐준 아주머니와 장난감들에게 큰 감사를 느낀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그래서 한 번은 값을 내지 않고 듬뿍 사랑 받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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