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보석 부른 '6개월 구속기간'…"전세계 유일" vs "인권침해" [보석 딜레마 下]
#지난 13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세 번째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은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올해 4월부터 6개월간은 쌍방울의 대북송금에 개입한 혐의로, 이번달부턴 쌍방울 관련 증거 인멸 혐의로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재판은 지난해 10월 시작돼 지난 10일까지 49차례 공판이 열렸지만 여러 이유로 공전돼 아직 갈길이 먼 상황이다.
#지난달 7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두 번째 출소를 했다. 검찰은 지난 2021년 10월 김 씨를 배임 혐의로 구속한 뒤 6개월 뒤엔 뇌물 혐의로 6개월 더 붙잡아 뒀다. 일 년을 채워 풀려난 김 씨는 지난 2월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다시 수감됐다. 영장을 달라고 할만한 새로운 혐의를 발굴하지 못한 검찰은 이번엔 기존 구속영장 청구 때 빠진 부분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받아주지 않았다.
재판 지연 심화로 구속 기한인 6개월 안에 선고를 내리기엔 어림도 없는 사건이 늘어나면서, 주요사건 구속 피고인의 신병을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고민은 6개월 단위로 반복되고 있다. 법원으로선 증거 인멸, 도주 우려를 무릅쓰고 ‘구속기간 만료 직전 보석’이란 고육책을, 검찰로선 ‘쪼개기 기소’란 비판을 감수하며 구속영장을 거듭 청구한다. 과거와 같은 마라톤 심리를 불사하는 재판부가 사라진 법원에서 피고인 측이 갖은 재판 지연 기술을 선보이다 보니 최대 6개월로 정해져 있는 심급별 구속 기간 제한과 현실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유일한 ‘6개월 구속기간’ 제한
재판 단계에서의 구속 기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수사·재판단계에서 구속기간 제한을 두지 않고, 영국은 기소 전에는 단계별로 기한을 제한하되 재판 시작 후에는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구속 사유가 재범 위험(최대 1년)이 아니라면 구속기한 제한은 없다. 일본도 중범죄자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경우 1개월 단위로 갱신해 사실상 무제한 구속이 가능하다.
6개월 룰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루인 법원 내부에서 먼저 일고 있다. 지난 4월 ‘사법부 싱크탱크’ 격인 사법정책연구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제도의 개선방안’ 학술대회를 열었다. 구속기한 완화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라는 명제와 수형자 인권 보호 강화라는 분위기에 막혀 금기시되던 주제였다. 학술대회의 동력은 사법부 내부의 광범위한 공감대였다. 앞서 2월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법원의 구속 기간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선 설문에 참여한 770명의 법관 중 93.9%가 이 제도의 완화 또는 폐지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사들 사이에서 구속 기간 연장의 필요성은 암묵적으론 다들 인정했지만 쉽게 꺼내지 못했던 얘기였는데 마침내 공론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게 법관들의 생각이다.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은 같은 보고서에서 구속기간 제한 제도 도입 취지를 “일제강점기 구속절차가 억압적 식민지 통치체제로 작동하였음을 반성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 뒤 “범죄의 지능화·복잡화·조직화,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심리 강화 등형사재판의 환경과 여건이 변화하였고, 공판정에서의 심리가 장기화되는 추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제도 변화를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현장에선 1·2심 구속 기한을 1년으로 늘리는 방안(김윤선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이 제시됐다. ▶중대 범죄 ▶재범 위험성 ▶참고인이나 피해자를 해칠 우려 ▶추가 심리가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다.
“피고인을 인질삼아 재판지연 해결하려는 것”
하지만 피고인의 구속 기한을 늘리는 것은 심각한 기본권 침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대근 한국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속이란 재판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라는 것을 고려할 때, 피고인 방어권 침해 소지가 있는 구속 기간 연장을 섣부르게 논의하긴 어렵다”고 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구속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재판 지연이란 시스템의 문제를 피고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부 공감이 높은 법원·검찰과 달리, 변호사들로선 구속 기한 연장에 끄덕이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6개월 구속 기한 아래 보석 제도는 변호사들에겐 일종의 시장이다. 통상 하루라도 빨리 구치소를 나가고자 하는 피고인은 보석 성사 여부에 성공보수를 거는 경우가 여전히 흔한 일이라서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변호사는 “보석 성공보수는 반사회적 법률행위에 해당해 무효지만, 피고인과 변호사 사이에 암암리에 주고받는 것도 사실”이라며 “보석 착수금과 성공보수 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이 오고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구속 기한 변경을 위해선 국회에서 형사소송법이 개정돼야 하지만 대표가 각종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과반 야당의 동의를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야권 관계자는 “검찰이 사법제도를 이용해 정적(政敵)을 보란듯이 잡아놓고 구속이 곧 유죄 판단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과연 구속 기간 제한을 풀어줄 정도로 우리나라 검찰이 탈정치화됐다고 볼 수 있느냐”고 따졌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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