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야 5년, 싸울 시간 없다"…기후위기 경고 '시조새' 앨 고어
'지구 온난화'라는 말이 귀에 익지 않았던 시절부터 기후위기의 '불편한 진실'을 경고해온 인물, 앨 고어. 대통령 선거 패배는 어찌 보면 그에겐 운명이었다. 1993~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통령으로 재임한 그는, 2000년 선거에서 스스로 고배를 들었다. 당시 개표 절차 및 결과는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그가 스스로 승복을 택한 것. 유권자 수는 1억이 넘는데, 단 500표 차 패배였다. 이후 그는 대선에 재도전하는 대신, 삶의 2막을 열었다. 기후변화 심각성을 알리는 환경 운동가로 변신하면서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 최신호에 따르면 단초는 그가 92년 상원의원 시절 출간한 소책자, 『균형 있는 지구』에 있다. 환경 문제는 그의 오랜 관심사였던 것.
2006년 그의 관련 강연을 모은 책과 영화 '불편한 진실'이 공개됐고, 2007년 그는 기후변화 심각성을 알린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기후 위기는 대다수에게 미래의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폭염과 폭우ㆍ폭설 및 대형 산불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으면서, 그의 선구안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뉴요커는 지난주 발간된 최신호에서 앨 고어와 특별 대담을 싣고 "그가 경고했던 일들이 현실로 닥쳤다"며 "그럼에도 그는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뉴요커는 기사 제목을 "앨 고어는 '내가 이럴 거라고 말했지?'라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붙였다. 피부로 체감하는 기후위기에 대해 인류가 지금까지 해오지 않은 일로 인한 절망보다는, 앞으로 해나갈 수 있는 희망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뉴요커가 "10년 전 인터뷰를 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는 요지로 질문하자 그는 "이젠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미래 아닌 현재의 당면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성과"라며 "기후위기는 결국 사람으로 인한 것이고, 사람이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주요 성과로 그가 꼽은 것은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분야로, 그는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최근 (돌출) 행동에 대해선 우려를 갖고 있지만 적어도 그가 전기차 분야에서 일궈낸 성과는 놀랍다"라고 말했다.
앨 고어를 그러나 환경운동가로만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는 기후위기 관련 기업 투자사인 제너레이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의장을 맡고 있어서다. 이 회사는 전기차 충전 등 탈화석연료 관련 기업 및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이윤 창출이 최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비영리기구 역시 아니다. 뉴요커 역시 이를 두고 "일정 부분 이해관계 충돌의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기존 기업들이 나서지 않는 분야에 대한 투자를 주도하고 녹색 성장 관련 경제 활동의 판을 뒤집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라는 옹호론 역시 존재한다.
정치인으로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고어는 이번 뉴요커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여전히 "(패배에서) 회복 중인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라는 무기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타율이 높은 도구가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정계에 이미 화석연료 관련 기업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뉴요커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대 석유화학 기업인 엑손모빌의 (렉스 틸러슨) 전 회장을 국무부 장관을 임명했었다"며 "이런 토대에서 정치인들이 기후위기를 위한 유의미한 활동을 앞장서서 하긴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이 만약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증세를 하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내리는 정치적 사망선고와 다름없다"라고도 전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필수적인 탄소 중립을 위해선 기업 압박 및 증세가 필수인데, 이는 표심에 반(反)하는 행위라는 의미다.
그는 올해 75세다. 환경 운동에 집중한 지 강산도 두 번 가까이 변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는 요즘 더 조바심이 난다고 했다. 그는 뉴요커에 "인류에게 주어진 건 길어봤자 5년, 짧으면 3년"이라며 "싸우거나 논쟁할 시간도, 절망할 여유도 없다"는 요지의 말을 되풀이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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