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與 "尹, 안쓰럽게 보여야"…총선 앞 강성 이미지에 떤다
“국민에게 좀 더 안쓰러워 보이고, 도와주고 싶은 이미지로 인식돼야 선거엔 도움이 된다. 그게 기본인데 우리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좀 약하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완패로 여권 내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이 한 말이다. 해당 의원은 1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강점은 추진력과 강단인데, 이런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보니 거리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강성’ 이미지가 자칫 내년 4·10총선에서 중도층 표심을 모으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비단 해당 의원외에도 "불쌍하게 비쳐져야, 거대 야당에 탄압받는 이미지가 윤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얘기는 여권 내부에 널리 퍼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이미 친윤계 의원들도 대통령실을 통해 윤 대통령의 이미지 변화를 조언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한 여권 원로는 “대통령은 조언 한 마디로 바뀔 사람은 아니다. 총선에 빨간불이 켜진 만큼 충격요법을 통해서라도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해야한다”고 했다. 강서구청장 보선 이후 이런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은 윤 대통령의 그간 행보가 누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무위원 향해 “野와 싸워라”
9월 정기국회를 앞둔 지난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에게 “여러분은 정무적 정치인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야 스펙트럼의 간극이 너무 넓으면 점잖게 얘기한다고 (일이) 되지 않는다. ‘전사’가 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65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는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야당의 도를 넘어선 공세를 적극적으로 막아내라는 의미였다.
이런 '지침'이 떨어지자 국무위원들은 즉시 실천에 옮겼다. 사실은 윤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보다 한발 더 나아간 이들이 많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9월 8일 대정부질문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회의장 좌석에 앉아 “공손히 답하라”고 하자 “정 의원님은 야구장에 오셨냐”고 받아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같은 날 김원이 민주당 의원이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자 “전형적인 가짜뉴스”라며 허공에 대고 서류를 세차게 흔들었다. 사회를 보던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최악의 대정부질문”이라고 할 만큼 분위기가 거칠었다.
여권 관계자는 “야당의 공세에 차분히 답했다면 국민 눈에는 ‘야당이 억지를 부린다’고 보였을 텐데 함께 묶여 비판받게 됐다”며 “대통령의 지시가 자칫 ‘국정을 평가받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아쉽다”고 했다.
“도와달라”는 말이 없다
17일 현재 국회의원 의석수는 민주당이 168석, 국민의힘이 111석이다. 민주당 협조없이 국민의힘 단독으로는 예산안·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야당을 향해 “도와달라”는 적극적인 메시지를 던진 적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6일 민주당의 집단 반대표로 부결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다. 야당 청문특위 간사인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여당에서 인사치레만 하고는 이후 커피 한잔도 안 사더라. 별로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신 야당에 강공으로 맞서왔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을 밀어붙이자 대통령실은 “입법 폭주”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각각 3월과 4월, 두 법안을 단독 의결하자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여권 관계자는 “입법을 강행하려던 야당을 향해 ‘민생을 위해 멈춰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면 야당도 단독 의결하기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며 “설사 야당이 응하지 않더라도 국민에게는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을 호소해 동정론을 얻는 기회일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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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이미지 강화시킨 “이념이 제일 중요”발언
윤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반국가세력들이 활개 치고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고도 말했다. 그 직후인 9월에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불이 붙으며 이념 문제는 정치권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민생보다는 이념 문제를 앞세워 대통령의 강성 이미지만 강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흉상 이전 문제는 보수층도 반대하는 사안인데 지나치게 밀어붙이면서 ‘대통령은 소통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쌓였다”며 “오히려 민생 이슈를 강단있게 밀어붙이면서 국민을 향해 ‘도와달라’고 했다면 시선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전후 독일 경제 부흥을 이끈 에르하르트 총리는 국민에게 항상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용기를 북돋웠다”며 “윤 대통령도 엄숙함보다는 친근한 이미지로 긍정적 메시지를 띄워야 국민이 호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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