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노벨경제학자의 충고
“여성 임금 적은 건 출산때문
유연 근무·사회적 돌봄 중요”
한국은 남녀 임금격차 최대
여성이 남성의 68.8% 수준
노르웨이,남성 육아휴직 93%
보육 수월하고 대학까지 무료
두 나라 차이는 제도 실행력
우리도 육아휴직 당연해져야
기존과 다른 획기적 변화 필요
미국 하버드대 여성 경제학자 클로디아 골딘 교수(77)는 궁금했다. 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해도, 전문직 진출이 늘어나도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적을까. 대학 졸업 후 출발선이 같아도 10년이 지나면 남녀 간 상당한 임금격차가 생긴다. 짐작하듯 원인은 출산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건 거의 언제나 여성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미국 사회의 ‘탐욕적 노동 문화’ 때문이다. 아이와 가정에 우선순위를 두는 여성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골딘 교수의 해법은 이렇다. 지금보다 유연한 일자리가 더 늘어나야 한다. 사회적 돌봄을 제공해 일과 삶의 양립이 가능해져야 한다. 그는 이 같은 연구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노동시장의 성별 임금격차가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OECD에 가입한 1996년부터 26년째 성별 임금격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남성 직장인이 100만원을 버는 동안 여성은 고작 68만8000원을 번다. 동일 직무 기준 성별 임금격차는 18.8%(남성이 100만원이면 여성은 81만2000원)로 일본에 이은 2위다.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등으로 임금격차가 심해지고, 이런 이유로 출산을 꺼리게 된다. 골딘 교수는 노벨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극심한 저출산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원인을 “한국 기업 문화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세계 최하위 합계출산율 0.78명. 2명이 결혼해 1명도 낳지 않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일할 사람은 줄고 고령층은 늘어난다. 이대로 가다간 50년 이내 인구 1500만명이 줄어든다니 낮은 출산율로 어떻게 경제 토대를 구축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정부는 저출산이 사회적 위협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 숫자인 2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왜 그럴까. 답은 현장에 있다. 당사자인 청년들에게 물어보라. 저출산은 분명 사회적 위협이지만 개인에게도 위협인가. 이들은 아니라고 답한다. 오히려 출산이야말로 개인에게 실질적인 위협이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으면서 아이만 낳으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청년층과 정책을 입안하는 중년층의 간극을 줄이는 게 대책의 핵심이자 출발점이다.
청년들은 주거문제, 무상보육, 육아휴직 강제화 등이 실현되지 않으면 아이 낳기를 주저할 것이다. 알다시피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육아휴직 제도는 있지만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은 돼야 꿈꿀 수 있는 일이다. 전체 노동시장의 80% 이상인 중소기업에선 여전히 남의 일이다. 운 좋게 육아휴직을 다녀왔더니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되는 황당한 일도 생긴다. 돌봄교실 부족으로 상당수 초등학생은 방과 후 돌봄을 위해 ‘학원 뺑뺑이’를 도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청년들은 아예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데 정부 정책은 주로 아동수당을 올리는 데 맞춰져 있다.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하는데 엉뚱한 곳을 긁고 있으니 효과가 없다.
반면 이 분야 우등생 노르웨이를 보자. 아빠의 93%가 육아휴직을 간다. 육아휴직을 안 받아주는 회사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돌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치원 보육료는 월 최대 37만5000원으로 못 박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내각 19명 중 9명이 여성이다. 상장기업 이사 40% 이상도 여성이다. 정부와 기업 고위층이 여성이니 육아 친화적인 제도의 정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어느 나라나 성평등 의식이 높아지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진다. 이 추세를 반등시키는 게 중요할 텐데 북유럽 국가는 여기에 성공한 반면 우리는 출산율이 가장 하락한 지점에 머물고 있다. 노르웨이나 우리나 육아휴직 제도는 있는데, 노르웨이는 가고 우리는 못 가는 차이다. 제도를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정책의 강제성이 필요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지금까지의 정책으로는 안 된다.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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