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사라지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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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의료·법조인, 산업재해 피해자 지원단체, 노동안전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노동건강전국센터(이노켄) 관계자들이 지난달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센터)를 찾았다.
센터는 2016년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진 과정, 출범 이후 사업 내용과 성과를 답변했다.
이제 서울시 감정노동센터는 간판을 내리는데 아무래도 꿈이 이뤄진 결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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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의료·법조인, 산업재해 피해자 지원단체, 노동안전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노동건강전국센터(이노켄) 관계자들이 지난달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센터)를 찾았다. 이들은 “일본에서 적용할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며 “한국에서 이 센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고 물었다. 센터는 2016년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진 과정, 출범 이후 사업 내용과 성과를 답변했다.
“손님을 모셔야 한다”는 정서 때문일까, 과로사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오래도록 지적해온 이노켄도 감정노동 연구는 깊지 못했다.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센터는 5년여간 매일 해온 일을 설명했다. 고객 갑질에 극단적 선택마저 생각한 이를 어떻게 심리치료했는지,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일터의 매뉴얼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등이었다. 이노켄 사람들은 “많이 배우고 간다”는 말을 남겼다. 민간외교를 겸한 센터의 교육은 종종 있었다. 이노켄에 앞서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이 센터를 찾아와 감정노동 대책을 물었었다.
일본인이 많이 배우고 돌아가기 10여일 전, 서울시의회에서는 ‘서울특별시 서울노동권익센터 운영 민간위탁 동의안’이 가결됐다. 감정노동센터를 포함한 6개 노동자 보호센터를 1개로 통폐합하는 내용이었다. 총 78명의 직원은 통폐합 후 67명이 된다는 계획인데, 세세한 업무량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센터들이 폐지되는 것인지 거듭 물으며 “솔직한 말로 민주노총 할 때 와서 저기 하고 그런 기구 아니냐”고 발언한 시의원도 있었다.
감정노동자 상담과 기업 매뉴얼 자문에 바쁜 센터 사람들은 그런 말이 있었는지도 잘 몰랐다. 갑질을 삼가고 관리자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노력들이 왜 진영의 문제가 되는지는 앞으로도 알기 어려울 것이다. 센터는 지난여름 이후 무너진 교사들을 상담해 왔다. H&M, 서울의료원, 세종문화회관의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매뉴얼 작성을 자문했다.
센터를 지탱해온 원칙은 정치인의 태도와 정반대였다. 그것은 남이 하는 일에 대한 존중이었다. 센터는 백화점 판매직과 콜센터 상담사, 경비노동자의 일을 함부로 폄하하지도 함부로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 일들이 반드시 필요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안내로 노동자들을 감쌌다. 이 존중이 죽음 부르는 갑질 사회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센터는 믿는다. 이정훈 센터 소장은 “불쌍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직업 가치를 낮잡는 일이며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 그보다 자신의 일에 보람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 등 13명의 센터 상근자들부터 보람과 긍지로 살아 왔다. 이들의 동력은 임금근로자 평균보다 낮은 급여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새로운 표준이 된다”는 자부심이었다. 예산이 크게 줄어도 작은 변화에서 의미를 찾았다. 이를테면 이 소장은 최근 서울의료원에 ‘보건의료 노동자를 존중해 주세요’ 안내문이 크게 인쇄돼 부착된 걸 보고 기뻐했다. 2019년에는 A4 용지 크기였던 안내문이었다.
수많은 상담과 캠페인 실적은 부차적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꿈은 사라지는 것이었다. 누군가 감정노동자 보호를 외칠 필요가 없어지면 그때 세상이 살 만해진 것일 거라고, 센터 사람들은 서로 말해 왔다. 이제 서울시 감정노동센터는 간판을 내리는데 아무래도 꿈이 이뤄진 결과는 아니다. 마음 다친 노동자가 많아서 센터의 심리상담은 지난 4월에 연말까지의 신청이 모두 마무리됐었다. 이 소장은 “이런 일들은 닥치게 돼 있다”며 “통합이 되더라도 성과들이 이어져서 감정노동자들이 변화를 못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경원 이슈&탐사팀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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