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촌철生인] 사라지는 것은 파랑새만이 아니다

2023. 10. 18. 04: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골적 검열과 무분별한
상업성에 오염된 SNS… 상식
벗어나면 언제든 멸종될 것

지난 개천절 페이스북 이용자 일부는 자발적 접속 거부 캠페인을 펼쳤다. 단 하루만이라도 페이스북에 접속하지 말고 아예 로그아웃 버튼을 눌러 놓자는 제안이었다. 최근 페이스북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싶을 만큼 노골적으로 개인의 어휘를 검열해 게시물을 삭제하고 빈번히 계정을 제한하는 것과 관련한 일종의 불매운동이었다.

심지어 유명 시인이 쓴 시 작품의 특정 단어를 검열해 시인의 게시물은 물론 시를 공유한 사람들의 게시물까지 무단으로 삭제해 버리다니 이용자의 분노를 살 만했다. 단 하루 시행된 불매운동에 얼마나 많은 이용자가 동참했는지, 거대 다국적 기업의 한국지사 경영진에게 제대로 경고 메시지가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종국에 이용자를 이기는 기업이 있다는 말을 나는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요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부업과 재테크를 함께하자는 계정이 넘쳐난다. 일면식도 없고 단 한번도 서로 ‘좋아요’를 누른 적도 없는 낯선 이들이 친구 추가를 하고 간다. 그런 계정들은 하나같이 일상적 평화로움을 가장한 사진들을 몇 장 올려두고 있다. 그보다 주를 이루는 건 한 달 만에 몇백만 원 수입을 올렸다거나 몇천만 원 이익을 보게 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캡처한 사진들이다. 그렇게 이익이 남는 일이면 저들끼리 하면 될 것을 무슨 홍익인간 이념으로 이렇게들 애쓴단 말인가? 이건 다단계 판매인가, 신종 사기인가? 끌끌 혀를 차며 바로 차단 버튼을 누르지만, SNS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온다.

수많은 개인들의 빛나는 개성과 취향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일상의 이 거대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판이 결국은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상업성으로 치닫는 것을 보는 일은 좀 서글프다. 한때 재야의 숨은 고수들과 글 잘 쓰는 이들의 눈부신 놀이터였던 네이버 블로그가 이제 온갖 상업 블로그로 도배된 것처럼.

지난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트위터를 인수하더니 올여름 트위터 명칭을 ‘X’로 바꿨다. 파랑새가 사라진 후 전 세계 수많은 이용자들은 파랑새를 애도하는 트윗을 올렸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세계자연기금(WWF)의 트윗.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트위터가 조금씩 발전시켜온 역대 파랑새 로고 5개를 나열한 후 2023년 마지막 자리에 트위터의 새로운 X 로고를 붙여놓았다. 그리고 링크한 내용은 현재 약 100만종의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고, 이것은 공룡시대 이후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라는 것. WWF는 또한 새들이 트위터 X로 바뀌며 사라지는 짧은 영상을 올림으로써 트위터 파랑새에 빗대어 새들의 멸종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전 세계 멸종위기종을 대표하는 판다의 모습을 로고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글로벌 환경보전단체 WWF의 재기와 순발력이 넘치는 멋진 캠페인이었다. 그들의 카피는 이랬다. ‘전 세계가 트위터 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파랑새만이 아닙니다.’

트위터의 새로운 경영주는 기업 인수 직후 직원을 대량해고해 뉴스에 오르더니, SNS를 전면 유료화하겠다고도 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쟁 중인 요즘은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부상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업이 늘 윤리적이지는 않다는 걸 잘 알지만, 알만한 기업들이 모두 ‘ESG’라는 이름으로 사회와 지구를 위한 지속 가능성을 제일 화두로 삼고 있는 시대에 글로벌 디지털 기업의 현황과 대책이 의아하기만 하다.

지난주 페이스북에서는 국내 유명인사와 몇 명 연예인의 이름과 사진을 사칭한 투자 광고가 떴다. 이름을 사칭당한 당사자가 페이스북에 가짜 계정으로 신고를 했는데, 페이스북은 그 계정이 자신들의 커뮤니티 규약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답장을 보내왔다고 했다. 사라지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이용자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기업들도 언제든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