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G7 모두 불참한 중국 최대 외교행사… 反美연대 색 짙어져
대대적 홍보하며 세 과시 나섰지만
이전 포럼보다 참석자 규모 줄어
中 경제 침체 등으로 사업 성격 변화
대형 인프라에서 작은 프로젝트로
올해 중국 최대 외교 행사인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17일 베이징에서 개막했다. 중국 정부는 이틀간 열리는 이번 포럼에 140개 국가, 30개 국제기구의 대표단 4000여명을 초청했다. 주요 7개국(G7) 등 서방국의 정상이나 정부 대표단은 불참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빈 격으로 참석하면서 반미 연대 색채가 한층 짙어졌다는 평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취임 첫해인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나자르바예프대에서 강연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인구 30억 시장의 ‘실크로드 경제벨트’ 건설을 제안했다. 이어 한 달 뒤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 중 중국 남부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내놨다. 이 둘을 합한 것이 시 주석의 핵심 과제이자 중국의 대외 팽창 전략이 된 ‘일대일로’(The Belt and Road) 프로젝트다.
중국 국무원이 이달 발표한 ‘일대일로: 인류 운명공동체 건설을 위한 중대한 실천’ 백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중국은 150여개 국가, 30여개 국제기구와 200여건의 협력 문서를 체결했다. 육로, 해상, 공중을 잇는 연결망도 촘촘해졌다. 중국은 유럽 25개국, 200개 이상 도시에 철도로 갈 수 있는 노선을 구축했고 104개 국가와 항공 양자 운송 협정을 체결했다. 허난성 정저우와 룩셈부르크를 잇는 하늘의 실크로드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방역 물자를 실어나르는 생명줄 역할을 했다는 게 중국 정부 설명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기반시설 건설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견제에 맞서 우군을 확보하는 성과도 거뒀다.
중국은 일대일로 출범 10주년이자 3년간의 코로나19 봉쇄 끝에 열리는 이번 포럼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최대한 많은 정상을 불러들여 세를 과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일찌감치 이 프로젝트와 거리를 두고 포럼 불참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참석 의사를 밝히면서 유럽 국가들은 더더욱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은 개막 나흘 전에야 대표단 규모를 공개했는데 어느 나라가 참석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2017년 개최된 1회 포럼에는 28개국에서 정상급 대표단을 보냈다. 2019년 2회 포럼 때는 37개국 지도자를 포함해 500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3회째인 이번 포럼의 참석자는 규모만 놓고 보면 1회 때보다는 많고 2회 때보다는 줄었다.
포럼에 가장 적극적인 외국 정상은 푸틴 대통령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중국 관영 CCTV 인터뷰에서 “시 주석은 세계가 인정하는 지도자”라며 “일시적인 흐름에 따라 결정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형세를 분석 평가해 장기적인 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또 “이것이 진정한 세계 영수와 우리가 임시직이라고 부르는 사람 간의 차이”라며 “임시직은 단 5분 동안 국제무대에서 쇼 한번 하고 사라지지만 시 주석은 이와 달리 확고하고 냉정하며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고 추켜세웠다. 장기집권하고 있는 자신과 시 주석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서방 지도자와는 근본적으로 정책 결정 권한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국영방송 로시야1 인터뷰에서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많은 손님이 오겠지만 주빈은 푸틴 대통령이 될 것이며 양국 정상이 비밀리에 대면 토론을 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시 주석으로선 푸틴 대통령의 방중이 반갑지만 지나치게 밀착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은 경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서방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해결을 위한 외교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국제사회 리더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시 주석은 18일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우군 확보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집권하는 한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계속 확장되겠지만 사업의 초점이 대형 기반시설 건설에서 작고 아름다운 프로젝트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경제가 둔화하고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들이 부채의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이 계속되면서 중국이 대형 투자에서 작은 프로젝트 위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대일로 참여국들이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부채의 덫에 빠졌다는 비판은 프로젝트 출범 이래 줄곧 제기돼 왔다.
이는 시 주석이 2021년 11월 일대일로 심포지엄에서 ‘지속가능한 고품질의 작고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강조한 뒤 나타난 변화다.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의 차관 공여 정책이 소규모, 단기 상환 프로젝트 위주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오스틴 스트레인지 홍콩대 부교수는 SCMP에 “중국 정책 은행들의 대규모 인프라 융자는 글로벌 규모에서 정점을 찍었다”며 “중국 정부는 점점 더 작은 규모 프로젝트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CMP는 “전문가들은 중국의 현재 경제 상황을 볼 때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규모 자금을 빌려줄 입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며 “그러나 시 주석이 있는 한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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