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K의료의 기묘한 풍경

2023. 10. 1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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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증원 논의가 뜨겁다.

대한민국 의사는 부족한가, 충분한가.

의사가 부족하기도 하고, 충분하기도 하다.

더 좋은 가격에 점을 빼고 보톡스를 맞을 수 있지만 여전히 필수 의료 의사가 부족한 미래가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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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의대 정원 증원 논의가 뜨겁다. 대한민국 의사는 부족한가, 충분한가. 이건 뜨거운 감자 같은 질문이어서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반대 측의 거센 반발을 부를 테니 그냥 박쥐 같은 대답을 하겠다. 의사가 부족하기도 하고, 충분하기도 하다.

집 앞 상가는 병원 간판으로 가득 차 있다. 내과 2개와 소아청소년과, 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마취통증의학과에 멸종 위기라는 흉부외과까지 있다. 아파트 상가가 거의 종합병원 수준이다. 그런데 기묘한 풍경이 있다. 폐와 심장을 전공하는 흉부외과에서는 다리 정맥류를 치료하고, 산부인과에서는 분만을 하지 않고,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에서는 실비보험 한도에 맞춰 도수치료 패키지를 안내한다. 피부병이 생겨 피부과를 찾았는데 “저희는 보험진료는 하지 않아서 피부병 진료가 안 돼요”라는 얘기를 듣는다. 아파트 입주민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피부병 봐주시는 피부과 좀 추천해 주세요’라는 글들이 올라온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데 정작 마실 물은 없는 상황이다.

대학병원에서는 의사가 부족해서 난리다. 병동 당직 의사와 응급실 의사를 구하기 힘들다. CT와 MRI를 판독할 영상의학과 의사가 부족하고, 마취과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미룬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판독 부담이 적고 보수도 높은 봉직의 자리로 빠져나가고, 마취과 의사는 대학병원의 고난도 마취보다는 개원가의 마취나 통증 진료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필수 의료의 핵심인 내과에서조차 수련을 마친 전공의의 70%가 나중에 개원해서 써먹을 수 있는 내시경과 투석을 배우고 싶어 한다. 정작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를 기피하니 지방에서는 심장혈관을 응급으로 뚫어줄 의사가 없다고 난리다.

대한민국 의료의 위기는 건강보험 체제 내에서 누적된 필수 의료에 대한 홀대와 비필수 의료의 비정상적인 팽창에 기인한다. 필수 의료는 공공적 성격으로 건강보험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10원 단위로 가격의 제한을 받는다. 보상은 제대로 못 받는데 힘들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모든 병원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 체제 안에서 진료해야 하는 국내 상황에서 병원의 협상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만성적인 저수가에 시달리는 대학병원의 대응은 쥐어짜기, 돌려막기와 과잉진료일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의료진은 번아웃으로 내몰린다.

반면 비필수 의료 행위는 편하고 위험하지 않은데 부르는 게 값이다. 입시 광풍을 뚫고 의대 입성에 성공한 스마트한 젊은 후배들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찾아 건강보험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실비보험과 비급여의 세계로 빠져나간다. 코로나 방역으로 저력을 보여준 K의료가 K드라마, K팝 수준인 줄 알았는데, 웬걸, 한 꺼풀 벗겨진 K의료의 민낯은 처참한 수준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병원 광고를 보니 특별 이벤트로 점 하나 빼는 데 2000원, 보톡스가 9900원이란다.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오 마이 갓, 동네 피부미용 클리닉에 젊은 의사가 무려 7명이다. 강남 본원이라는 곳을 클릭해 보니 의사가 10명이다. 전국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난리인데 젊은 의사들은 다 여기 모여 있었구나.

의사가 부족하다면 늘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필수 의료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없이 정원을 왕창 늘려서 막연하게 낙수효과를 기대한다면 고위험, 고난도, 저수가에 시달리는 필수 의료로 과연 물이 얼마나 흐를지 의문이다. 저출산 시대에 소중한 인적 자원을 의대로 끌어와 미용과 비급여 시장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흘려보낼 수도 있다. 더 좋은 가격에 점을 빼고 보톡스를 맞을 수 있지만 여전히 필수 의료 의사가 부족한 미래가 다가올지도 모른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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