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기도한 순례길… 일상의 삶으로 이어지다

2023. 10. 1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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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소 목사의 산티아고 순례기] <1>
유진소 부산 호산나교회 목사가 최근 안식년을 맞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유 목사의 순례길과 묵상 여정을 게재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메세타 지역 풍경으로 해발 고도 1000m가 넘는 평야 지대이다(왼쪽). 유진소 부산 호산나교회 목사가 최근 아내 유미은 사모와 순례 8일째 되는 날 나바라테라는 마을에서 잠시 휴식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 목사 제공

안식년을 맞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한 것은 특별한 이유와 사연이 있다. 2012년 아들과 걸으면서 함께 가지 못했던 아내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아들과 나는 여러 가지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목회에만 전념하다 갖게 된 부작용 같은 것이었다. 그때 성령 하나님은 아들과 함께 순례길을 걸으라는 감동을 주셔서 실행에 옮겼다. 당시 아내에겐 다음 안식년에 꼭 같이 가자고 약속했고 11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됐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가 묻힌 곳을 향한 여정이다. 9세기 이후 순례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요즘엔 종교 유무, 교파와 상관없이 순례길을 찾는 방문자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리는 ‘카미노 프란세스(프랑스길)’ 출발지인 프랑스 남부 생장(Saint Jean)에서 순례를 시작했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았다. 현장 자원봉사자는 이번 순례가 처음인지 물었다. 나는 두 번째이며 아내는 처음이라 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내 마음은 어떤 감회에 잠겼고 이 순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주 강렬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

11년 전 당시 나는 그 자리에서 아들과 함께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으면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아들과 단둘이 한 달간 길을 걷겠다 했고, 이 여정으로 아들과 소통을 회복하고 우리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와 다른 한편의 두려움이 공존했다. 하지만 왠지 자신이 없었다. 나의 이런 갈등과 내적 싸움은 아들과 걸으면서 계속됐다. 순례 코스를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삶과 신앙에 대한 아들과의 간격은 자못 크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막막했다. 그동안은 그저 부딪히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니, 내가 이런 현실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마주하니 그 간격은 생각보다 크고 심각했다.

물론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고 역사하셔서 아들과 많은 부분에서 가까워졌고 관계도 회복됐다. 나중에 아들도 정말 좋았다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아버지와 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했던 숱한 간구는 확신이 부족했었다.

그런데 11년 만에 그 자리에 아내와 함께 와보니, 그때 아들과 걸으며 드렸던 기도제목은 모두 응답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확신도 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온전히 다 응답되었음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순례의 길은 기도의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걸으며 기도하며’, 이것이 순례의 핵심이었다.


아내와 나는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부터 33일 만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매일 기도했다. 하루 25㎞씩 총 800여㎞를 걸었다. 아침에 알베르게라는 숙소에서 출발할 때 우리 부부는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고, 오후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그 하루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걷는 여정 내내 가능한 한 계속 기도했다. 대화하다가도 기도하고 싶으면 서로 신호를 주고 앞뒤로 떨어져 걸으며 기도했다.

또 같이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을 만나면 기도하라는 뜻인 줄 알고 각자 떨어져 걸으며 기도했다. 오세브레이로(O Cebreiro)의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너무 힘들어 기도가 저절로 나왔고, 해발 고도 1000m가 넘는 고원지대인 메세타(Meseta) 같은 평탄하고 지루한 길을 걸을 때는 타박타박 내 발걸음 소리를 심장 박동처럼 느끼면서 기도했다. 우리는 대자연이 보여주는 황홀한 아름다움의 한가운데를 걷기도 했는데, 그때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했다. 동네 한복판 교회당이 있는 영화 세트장 같은 마을에 들어서면 1000년 전부터 이곳을 걸었을 순례자들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걸으며 기도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순례하며 기도할 때에는 우리가 보통 집이나 교회에서 하던 기도 형태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걸으면서 혼자 계속 중얼거리면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테니 말이다. 물론 몇 번은 그렇게 기도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하나님께 부르짖고 싶은 것은 부르짖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도하면서 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더 많이 듣게 됐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눈에 비친 내 실존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물론 회개 기도도 많이 했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걸으며 기도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삶의 비밀을 다시 한번 깨닫고 확인했다. 순례자의 영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매일 ‘살며 기도하며’ 라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인들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계속 기도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걸으며 기도하며’, 그것이 순례였다.

(부산 호산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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