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이승만 박사의 자유민주주의와 동반성장 정신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지난 75년(1948~2023)은 눈 깜짝할 시간이라 할 정도로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우리 국민이 이룬 업적은 눈부실 만큼 찬란하다. 오랫동안 우리를 옥죄던 절대빈곤에서 벗어났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극동의 분단국이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 성공의 비결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의 기틀로 삼은 데 있다. 이를 바탕으로 농지개혁에 성공하고, 북한의 침략을 막아냈다.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도 큰 몫을 했다. 이러한 공(功)은 누구보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북한처럼 공산 독재국가가 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자유가 박탈된 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
「 토지개혁과 한미방위조약 등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 기틀 마련
공산주의 맞서 경제적 평등 역설
함께 잘사는 사회의 가치 일깨워
」
아직까지도 이승만 박사는 공은 가려지고 잘못만 주로 부각되는 비운의 지도자다. 일단 한 시대를 이끌고 떠난 분들은 위대하든 아니든 그 시대로 들어가 평가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분들의 역사적 기여와 공로를 강조하고 가르쳐야,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가는 개척정신을 기를 수 있다.
내가 이승만 대통령을 직접 본 것은 1960년 4월 26일,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이다. 당시 나는 이화장 부근의 동숭동 산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날 이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며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돌아왔다. 운집한 시민들을 향해 여윈 손을 흔들며 눈시울을 붉히던 노신사의 모습이 지금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그로부터 52년 후인 2012년 10월 3일, 이승만 박사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교는 한국 동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 강의실을 ‘이승만 렉처 홀’로 명명했다. 김종석 교수(홍익대)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에 이어 나는 자리를 옮겨 강당을 메운 청중들에게 제1회 이승만 박사 추모 강연을 했다. 제목은 ‘Hope, Compassion and the Can-do Spirit: President Syngman Rhee and Korea’s Path Forward’로, 한국은 희망, 연민, 도전이라는 이승만 정신으로 지속적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의가 끝난 후 프린스턴 대학신문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만일 그분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은 누구나 70%만 좋으면 좋은 사람이라며 문화혁명의 주역인 마오쩌둥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했는데, 이 대통령은 ‘공칠과삼’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침 올해는 하와이에서 활동하던 이승만 박사가 『태평양잡지』에 ‘공산당의 당(當) 부당(不當)’(1923)이란 논설을 쓴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요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공화제 성립 이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신분 계급 제도가 혁파되고 노예 해방이 이루어져 인민의 평등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본주의 발달로 빈부 격차가 생기고 경제적 노예 계층과 계급 제도가 만들어졌다. 공산당이 이를 평등하게 하자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자는 주장은 틀렸다.’
이 박사는 공산주의를 ‘자유를 바라는 인간의 본성을 거역하면서 국민을 지배하려는 사상체계로 규정하고, 공산주의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지 불과 6년 만에 공산당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반공사상을 확립한 이 박사의 혜안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공산주의에 솔깃한 상당수의 서구 지식인들이 러시아를 칭송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 박사는 극심한 대립을 겪던 해방공간에서 우리에게 경제적 평등의 중요성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저성장과 불평등을 푸는 하나의 단서는 동반성장이다. 동반성장은 ‘함께 성장하고 공정하게 나누어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방안이다. 훌륭한 교육으로 길러진 인재들이 창의와 혁신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고 경쟁은 공정하며 누구나 경제적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잘사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동반성장 사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남 이승만 박사는 세계사의 흐름을 간파하고 조선 사회의 누적된 모순을 타파하고자 진력한 선각자요,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통해 국민을 일깨우고자 했던 사상가이자 탁월한 국제정치 전문가였다. 동북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국제정세가 불안정할수록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과 리더십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朴 "이정희 미워서 통진당 해산? 그럼 체제전복 놔두냐" [박근혜 회고록] | 중앙일보
- 울며 실려나간 네이마르, 십자인대 다쳐 수술대…메시는 응원 메시지 | 중앙일보
- "함부로 제주에 오지마라" 이주 9년차 이유준의 경고 | 중앙일보
- 박수홍 측 "큰형 탓 증언 후 혼난 동생…부모가 보지 말자 해" | 중앙일보
- 유명 쉐프가 판 1등급 한우, '젖소'였다…공영홈쇼핑의 배신 | 중앙일보
- "지능 낮음, 3500만원"…중국 난리난 '장애 여성 매매' 무슨일 | 중앙일보
- "창가 손님 먼저 타세요"…6년만에 부활시킨 美항공사, 왜 | 중앙일보
- "친환경" 외친 美장례식장…부패 시신 189구 무더기로 나왔다 | 중앙일보
- 당첨된 로또 들고가니 "이미 돈 받아갔다"…복권방 '황당 사건' | 중앙일보
- 마코 가고 가코 왔다…평민 된 언니 자리엔 '일본판 다이애너'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