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5년, 집에 온 50대 "다신 안 가"…예산도 1072만원 절감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부모나 지인 면회를 갔다 나오면서 "나는 저렇게 안 산다"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장기요양실태조사(2020년)를 보면 요양원 환자의 78%는 자녀가 입소를 결정했다. 병세가 호전되면 집으로 부모를 모시겠다는 자녀가 25%에 불과하다. 60세 이상 부부의 31%가 맞벌이를 한다(통계청,2022년). 집에서 돌봄을 받기 점점 어려워진다. 저소득층은 더 취약하다. 지난해 한 달 이상 요양병원에 입원한 의료급여 수급자(주로 기초수급자)는 8만3406명이다. 이 중 44%가 1년 넘었다. 석 달가량 지나면 '병원이 집'이 된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병원에 사는 '사회적 입원' 환자이다. 장기입원 환자 중에 많다.
입원 얼마 안 지나 집 정리
"재입원할 생각이 있나."(기자)
"다시는 안 간다."(정종문씨)
"병원에서 밥도 주고 옷도 주는데 좋지 않으냐."(기자)
"하나도 안 좋다. 갈 생각이 전혀 없다."(정씨)
■
「 병원=집인 '사회적 입원' 만연
탈병원 프로젝트 1700명 집으로
건강 좋아지고 우울증세 감소
전문가 "탈병원 대폭 확대해야"
」
기초수급자인 정종문(52·광주광역시)씨는 16일 기자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는 2017년 6월 뇌출혈로 쓰러져 우측이 마비됐고 말을 못했다. 요양병원 3곳을 전전했다. 4인 병실의 3.3㎡(1평)도 안 되는 침상에서 5년 살았다. 1년 반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고, 휠체어에 의지해 화장실만 오갔다. 2년 지나 복도에 가끔 나갔다. 다른 환자 신경 쓰느라 TV를 못 봤고 인터넷을 했다. 중간에 집을 정리해 버렸다. 정씨는 "병원이 집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다 구청 의료급여사례관리사의 설득을 받고 지난해 6월 임대주택으로 돌아왔다. 주 2회 반찬이 배달되고, 활동보조사의 도움으로 집 근처 병원에 오간다. 주 2~3회 집 앞 공원에 나가 1시간가량 보낸다.
정씨는 집에 와서 몸과 마음이 좋아졌다. 말을 잘 못 했으나 기자와 대화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 연습을 한다. 신체 움직임이 좋아졌다. 정씨는 "이제는 TV도 맘대로 보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해방감을 즐긴다.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며 "조금씩 정상생활을 회복하고 있고 비로소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매달 36만원가량의 기초 생계비로 생활한다.
탈병원 환자 72% "집이 더 좋아"
정씨의 탈(脫) 병원 프로젝트는 보건복지부의 재가(在家) 의료급여 시범사업이다. 같은 병으로 한 달 이상 입원한 환자 중에서 의료의 필요성이 낮은 사회적 입원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2019년 6월 13개 시·군·구에서 시작해 지금은 73개로 늘었고, 내년 7월 전국으로 확대한다. 4년 동안 1667명이 집으로 돌아갔다. 많지는 않다. 65세 이상 노인이 55.4%, 6개월 이상 장기입원자가 36%를 차지한다. 의료급여 환자는 거의 병원비가 없다. 집으로 가는 환자는 정부가 의료·돌봄·식사 등을 지원한다. 전문청소업체가 집을 정리하고, 냉·난방을 지원한다. 전동휠체어 등의 의료용구, 생활용품 등을 지원한다. 이런 지원에 매달 최고 60만2000원을 쓴다.
정부가 집으로 돌아간 환자 375명을 면접조사했다. 퇴원 결심 이유는 입원할 이유가 없어서(47%), 병원 생활이 불편해서(29%)라고 답변했다. 집에 돌아온 후의 삶에 대해 72%가 만족감을 표했다. 47%는 병원에 있을 때보다 건강이 좋아졌다. 70.7%는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예산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가 986명의 퇴원환자를 분석했다. 요양병원 입원비(월 249만7957원)에서 각종 지원금(160만4585원)을 제하니 89만3372원이 남는다. 연 1072만원의 예산을 아낀다. 정종문씨의 경우 의료비가 92% 줄었다.
의료급여 환자는 152만명에 달한다. 예산(국비 기준)이 2019년 6조4374억원에서 올해 9조984억원으로 급증했다. 요양병원 환자는 질병 중증도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가장 낮은 두 단계 환자의 비율이 32%이다. 이들이 사회적 입원 환자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상태가 급변할 가능성 작고 복지시설이나 집에서 대응이 가능한 상태'를 사회적 입원이라고 규정한다. 일본 일반병상 환자의 36%, 요양병상 환자의 52%가 사회적 입원으로 본다(『사회적 입원 연구』학지사메디컬, 2007년 기준). 한국은 이런 규정이 없다.
"그룹홈 의료서비스 허용해야"
일반환자도 사회적 입원을 많이 한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요양병원 입원환자의 20~30%가 사회적 입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요양병원이 입원 환자(의료급여 무관)를 퇴원시켜서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면 수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2019년 시작했지만, 성과가 미미하다. 병원 인센티브가 적은 데다 요양병원이 퇴원을 바라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다.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집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권 교수는 "집으로 갈 수 없는 사회적 입원 환자가 훨씬 많다. 이들이 공동생활가정·그룹홈·요양원으로 갈 수 있게 이런 시설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법령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숙 강원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급속한 고령화에다 부양 의식 저하 등을 고려하면 노인의 사회적 입원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의료비·돌봄·간병비 등이 불필요하게 증가하고 당사자의 삶의 질이 뚝 떨어진다"며 "집과 병원살이의 삶을 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탈(脫) 병원 사업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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