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의 마음 읽기] 면접, 평가, 심사
점점 평가자의 위치에 설 일이 많아진다. 평가할 자격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쌓아온 경력과 타이틀 때문이다. 평가자들은 자신이 남을 판단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보다 일을 더 잘할 사람을 뽑고 싶고, 이미 유연성이 떨어진 내 사고와 조직의 변화 필요성은 일종의 니즈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나는 긴장할 필요 없이 서류를 훑고 판단만 하면 된다는 느슨함이 외부 면접, 평가, 심사자의 자리를 수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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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사의 계절은 곧 심사의 계절
객관적 평가, 주관적 평가 충돌
심사위원은 상투적이지 않은가
」
지난봄 나는 출판 편집자 지망생들이 입학하려는 학교의 면접관이 되어 절반을 떨어뜨렸고, 그중 합격한 절반은 반년 동안의 교육을 거쳐 올가을 출판사 면접을 준비 중이다. 늘 느끼지만 필기시험 이후 면접에서 지원자 간의 변별성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어떤 면접관은 에너지를 중시하고, 어떤 면접관은 지나치게 나서지 않는 태도를 선호한다. 공통으로 꼽는 부적격 요소라면, 누구나 어두운 인상은 꺼린다는 것이다. 이는 떨어진 사람이 더 좋은 자질을 갖춘 경우도 종종 있음을 뜻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면접 뒤의 괴로움은 응시자뿐 아니라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면접관에게도 주어진다. 아무리 양적, 질적 평가 기준을 세분화한다 해도 가치관(선입견)과 취향은 크게 작용하고, 최종 결정에서는 다수결을 따르게 마련이다. 심사위원들은 때로 ‘떨어진 응시생들은 스스로 길을 잘 개척해나갈 것’이라는 말로 책무 의식을 덜어낸다.
가을과 겨울은 심사의 계절이다. 지난 한 달간 인터넷 서점에서 소액의 상금을 걸고 내가 편집한 책 『베를린 함락 1945』의 리뷰대회를 열었고, 독자들은 700쪽가량의 이 책을 읽고 열정적으로 리뷰를 썼다. 『봄의 제전』과 『피에 젖은 땅』을 펴내면서 같은 행사를 진행한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꽤 많은 독자는 책임편집자의 실력을 월등히 추월한다. 신간 보도자료를 쓰면서 내용을 겨우 소화할까 말까 한 요약에 그칠 때가 있어 저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품는 게 편집자인데, 일부 독자의 독후감은 놀라울 정도의 흡수력과 배경 지식, 통찰력을 보여줘 똑같이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편집자들은 종종 서로 이야기한다. “독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우리가 하는 서점 광고와 SNS 홍보에 피로를 느낄 뿐 아니라 그런 얄팍한 노출에 넘어올 부류가 아니다”라고. 전문가 영역에서는 자질이 가장 중요한 요소겠지만, 편집자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평가와 판단을 내리면서 그 자질을 제대로 갖추는 건 은퇴할 즈음이 아닐까 늘 생각한다.
올해를 포함해 나는 한 주간지의 문학상 심사를 3년째 맡고 있다. 첫해에 수락한 건 내 나름대로 소설의 열혈 독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해에는 당선작만이 아니라 응모작을 모두 읽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하게 됐다. 심사는 생각보다 어렵다. 떨어진 어떤 작품들은 당선된 작품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혹은 심사위원들 간에 의견이 갈려서 당선작에 대해 다른 심사위원은 만족하지 못하는 일도 일어난다.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지우고 싶을 만큼. 세 번째인 올해는 정말 잘 판단해보고 싶다는, 즉 과거의 판단에 실수가 있었다면 이를 만회할 기회를 얻기 위해 수락했다.
흔히 평가 잣대로 객관성을 들이대지만, 주관성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에 따르면 “객관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본래는 주관적인 것”이다. 질문이나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현상을 부수고, 인습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다수결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대상과의 관계를 새로이 설정하는 것. 이렇게 고도로 정련된 주관성은 훨씬 더 큰 객관적 힘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그러한 심미안을 지닌 평가자는 자의성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평가 대상자의 반발을 덜 살 것이다.
전에도 나는 한 기관에서 우수 논문 심사를 맡은 적이 있고, 한 대학에서도 교수들의 원고를 심사한 적이 있다. 사실 출판 편집자에게는 전문 학위가 없어도 박사급 연구자들의 논문과 연구를 심사할 기회가 종종 주어진다. ‘대중 독자의 관점을 가장 잘 안다’는 게 자격을 마련해주는데, 대중의 대표자로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 일을 만약 수월하게 해냈다면 오만을 심어줄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늘 후보자의 상투성을 경계하는데, 자신이 심사할 때의 기준은 얼마나 상투적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 중 여러 사람은 과거 어느 출판사 면접에서 떨어진 이력을 갖고 있다. 지금은 훌륭한 편집자이자 경영자인데, 과거 어떤 면접관들은 그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탈락시킨 면접관에게 감사하기도 한다. ‘퇴행’의 시스템으로 들어가기보다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 그곳에서 이력을 시작했다면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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