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루이스 글릭, ‘베일’
시는 우리 시야에 드넓게 펼쳐진 안개를 걷게 만든다. 안개가 감추어둔 것을 또렷하게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한다. 잔혹하고 추한 것을 드러내는 것에 더 몰두할수록 시의 힘은 강해진다. 잔혹하고 추한 것을 들추어 보게 하는 데에 애를 쓰는 한, 시는 필연적으로 차원이 다른 언어로써 아름다워진다. 몰이해가 이해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힘은 아름다움과 이러한 방식으로 결합할 때에 광휘를 얻는다.
루이스 글릭은 ‘아베르노’에서 안개에 갇힌 상태와 안개가 걷힌 상태를 오가며 이 세계에 던져진 인간상을 조망해낸다. ‘소리 지르고 싶다/ 너희는 하나같이 다 꿈속에서 살고 있어’라고 한다거나, ‘안개가 걷혔어-/ 그건 새로운 인생 같다’라면서.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그 베일을 걷어 올리려고./ 네가 무엇과 작별하는지 보려고.”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이 드러났다./ 그 의미만은 드러나지 않았다.’
루이스 글릭이 베일을 걷고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것만 골똘히 사색한다 해도, 이번 생애가 모자랄 듯하다.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 해도 달라지는 무언가가 있으리란 것은 이미 알 수가 있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삶’이라는 여정을 다른 시야로 파악하게 될 것은 확실할 것이다.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다시 본다는 것은 다시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 글릭이 시를 통하여 얼마나 여러 번 삶을 살고 죽음을 통과하고 또다시 살아나 살아가고 또 죽음에 다다랐는지, 그 감각의 한 쪽 부위나마 촉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시인에게 배운 것은 이것이다. 죽음이 비통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가 비통한 것이다. 루이스 글릭은 지난 13일에 눈을 감았다. 베일 바깥으로 비로소 온전히 나아갔으리라. 시인의 명복을 빈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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