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적게 갖기’라 하네 #비움라이프

김초혜 2023. 10.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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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엘르> 패션 에디터 김미강에게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물었다.
ⓒ Andrej Lišakov

오래 머물던 집을 떠나 일 년 전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곳보다 절반은 더 작은 집이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짐을 옮기고 한숨 고르며 쌓인 박스들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이 적잖게 느껴졌다. 더불어 거주공간이 작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했다. 그렇게 내가 가진 것들이 다시 줄어들었다. 중고로 되팔 수 있는 것은 처분하고, 버릴 수 있는 건 과감하게 버렸다. 그럼에도 섭섭하거나 그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 없다. 소유한 것을 정리하고 줄이는 데 이미 익숙하기도 했지만, 거기에 얽힌 시간과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몇 번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이번에도 원고 청탁을 받고 가만히 내 작은 보금자리를 살펴봤다. 의자에 앉은 채로 빙그르르 돌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집. 옷장에는 오래전에 구매해 마르고 닳도록 입어 지인들도 익히 아는 셔츠, 재킷 등이 자리하고 화장대 위의 화장품도 가짓수를 줄인 지 꽤 됐다. 액세서리도 정말 좋아하는 몇 개만 남겨놓았다. 물론 이사하면서 새로 들인 물건이 없는 건 아니다. 필요했거나 길게 고민해서 산 것도 있다. 다만 내가 경계하는 건 물욕을 쉬이 통제하기 어려운 ‘마음’이 찾아오는 날이다. 그런 날이 오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SNS 타임라인을 보다가 문득 남과 나를 비교하거나, 각종 스트레스로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때 등이다. 이런 어수선한 감정에 휘둘려 마구잡이로 장바구니에 무언가를 넣을 때면 반드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왜 나에게 그 물건이 필요한지, 그것을 들이면 무엇을 빼야 하는지 오래 고민한다. 그렇게 3~4일 정도 소유욕을 들끓게 하는 대상의 중요성과 우선순위에 집중하다 보면 솟구치던 물욕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홧김에 결제 버튼을 눌렀던 횟수와 카드값이 비례했던 과거의 경험 덕에 얻은 교훈이다.

어쩌면 그건 순수한 소유욕이라기보다 각종 감정이 충돌해서 만들어낸 화풀이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빈 공간은 채우고 싶기에 삶의 무게가 클수록 우리는 신선한 자극과 행복을 원하고, 그것을 물건에 투영한다. 그러나 특정한 역사나 서사 없이 얻은 물건이 주는 희망은 잠깐이며, 그들은 방구석을 차지하며 시간과 습기만 먹어 치운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가득 찬 옷장을 보며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는 거야?”라고 한탄했던 기억을. 결국 내게 있어 미니멀 라이프란 자신을 가다듬는 일과 다름없다. 한편으로는 트렌드를 좇으며 새로운 아이템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패션업계 종사자가 미니멀리즘을 주창하는 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최근 프리랜서로 전향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면서 ‘적게 갖기’를 지향하는 내게 신선함에 대한 갈망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꿈꾸는 패션계의 기복은 늘 도전이다. 매 시즌 등장하는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물건들과 그걸 착용한 사람들 앞에서 1000번은 넘게 흔들리고, 미디어가 송출하는 각종 먹방에 침이 고여 배달 앱을 서성인다. 하지만 새로운 옷과 가방이 주는 기쁨은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지고, 주문한 음식들이 남긴 거북함과 각종 쓰레기는 온전한 내 몫이 된다.

소유한 것들이 ‘처리’해야 하는 것들로 전환될 때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처치 곤란인 물건들이 쌓여 폐기물 산을 이루는 장면은 모든 게 내 탓인 듯 불편하기만 하다. 갖고 싶다는 욕구는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소비 환경과도 연결돼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로 점철된 각종 정보들이 우리를 24시간 내내 쇼핑의 늪으로 이끈다. 맛있고 멋있어 보이는 화면 속에서 빠져나오기는 늘 어렵다. 그렇기에 ‘갖고 싶다’는 감정은 사회가 갖가지 방향으로 우리를 자극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건 나의 안팎에서 촉발해 거미줄처럼 얽힌 욕망과 욕구가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파악하고, 최대한 그걸 끊어내 주체적 안정을 찾고 싶어서다. 나는 무언가를 가져야만 가능해지는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 미니멀 라이프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작가로 활동하는 에린남은 집 안을 비우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녀의 책 중 하나인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의 부제는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이다. 그 제목을 보고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소유를 과시하고 그걸 따라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주도적인 사회 속에서 가진 걸 줄이며 사는 건 트렌디하지 않다. 그래도 상상해 본다. 우리의 취미가 그리고 취향이 ‘미니멀 라이프’가 된다면 우리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말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강조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20대와는 달리 점점 어수선해지는 나의 오늘이 조금씩 단순해지고 여유로워짐을 느낀다. 그렇게 최소한의 것들로 구성된 나만의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와 안락함이 좋다. 더 확장해 보면 미니멀 라이프는 재난의 시대에 놓인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심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시도이기도 하다.아마도 지속적으로 미니멀 라이프가 언급되는 이유는 채우기 급급했던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고, 발 디딘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신호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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