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착공…‘사전청약 당첨’ 포기? 혼란한 3기 신도시
정부가 주택 공급 대책 일환으로 3기 신도시 물량을 3만가구 이상 더 늘리겠다고 예고했지만, 3기 신도시 입주가 당초 계획보다 최소 1~2년가량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전청약 당첨자들 속을 끓이고 있다.
정부는 최근 자금 경색과 미분양 증가 등으로 위축된 민간 부문 주택 공급을 보완하기 위해 공공주택 총 12만가구를 신속하게 공급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당장 부족한 물량은 공공주택 공급을 늘려 보완하고, 민간 부문에서는 대기 중인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는 게 ‘주택 공급 대책’의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당장 5만5000가구 규모 공공주택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위축된 민간 부문 주택 시장에서 공급이 다시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목표로 한 5만5000가구 중에는 수도권 3기 신도시 신규 공급 물량(3만가구)이 가장 많다.
현재 수도권 3기 신도시는 경기 남양주 왕숙과 인천 계양,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부천 대장에서 17만6000가구가 계획돼 있다. 여기에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용적률(바닥면적 대비 건축 연면적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3만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3기 신도시 평균 용적률은 196%다. 국토교통부는 “물량을 늘리면 조성 원가 감소로 분양가 인하 효과가 있다”며 “전용 85㎡ 기준 분양가가 3.3㎡당 2500만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전청약 당첨자 9% 입주 포기
정부가 야심 차게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는데도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기존에 발표한 3기 신도시 공공 물량 중에서도 아직 착공에 들어간 곳이 없는데 공급 계획을 내놓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냐는 분위기다. 3기 신도시 입주 일정이 당초 계획보다 1~2년씩 밀리고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나온 비판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제출받은 ‘2018~2023년 7월 사업 승인 대비 미착공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사업 승인을 받은 11만6479가구 가운데 5만799가구(43.6%)가 미착공 상태다. 이 중 3만2121가구는 토지 매입까지 마치고도 착공이 되지 않았다. 토지 보상, 부지 조성 공사 등 절차가 늦어진 탓이다.
특히 토지 매입까지 마쳤으나 미착공 상태인 물량에는 3기 신도시 공공분양주택 사업 승인 물량(1만4361가구)이 전부 포함됐다. 2021년 말 승인을 받은 고양 창릉 S6(430가구), 남양주 왕숙 A1·A13 등 9곳(4875가구), 남양주 왕숙2 A1 등 3곳(2014가구), 부천 대장 A-5 등 3곳(1491가구), 인천 계양 A17 등 3곳(1415가구), 하남 교산 A2(1115가구)와 2022~2023년 추가 승인을 받은 블록 전체다. 승인 물량 가운데 인천 계양 2개 지구(A2 747가구·A3 359가구)만 10월 중 착공 예정이다.
주택 공사에 앞서 진행하는 조성 공사 역시 인천 계양이 지난해 11월 착공했고 남양주 왕숙이 첫 삽을 뜬 상태지만 나머지 지구는 착공을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3기 신도시는 당초 목표(2025~2026년)로 했던 입주 일정이 전체적으로 1~2년씩 밀릴 전망이다.
이에 따라 그나마 속도가 가장 빠른 인천 계양은 당초 2025년 첫 입주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현재는 빨라야 2026년 상반기쯤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3기 신도시도 2025년에서 2027년쯤으로 미뤄졌다.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은 2028년,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은 2029년 각각 준공될 예정이다.
3기 신도시 사업이 최소 1~2년가량 지연될 것으로 보이면서 이미 사전청약에 당첨된 예비 입주자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2021년 첫 사전청약을 실시할 때만 해도 빠르면 첫 입주가 2025년에 시작될 것으로 예고됐는데 2년이나 늦어지면 내집마련 계획에 여러모로 차질을 빚게 돼서다.
사전청약은 본청약 1~2년 전에 청약을 진행하는 제도로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안정적으로 주택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본청약 시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하지만 3기 신도시가 당초 계획과 다르게 토지 보상에 시간이 지체되면서 착공 일정 자체가 밀렸고, 전반적인 일정이 덩달아 밀리면서 아직 본청약 일정도 불투명한 상태다.
제때 입주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커지자 사전청약에 당첨되고도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하나둘 늘고 있다. LH에 따르면 2021~2022년 진행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당첨자 1만5024명 가운데 1320명(8.7%)이 입주를 포기했다.
지난해 초 인천 계양 지역 사전청약에 당첨된 A씨는 “전세 계약을 한 차례만 갱신하면 될 줄 알았는데 입주 계획이 틀어져 골치가 아프다”며 “차라리 당첨을 포기하고 민간 청약에도 도전할지, 청약 당첨 확률이 희박하니 그냥 매매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푸념했다.
일각에서는 3기 신도시 일정이 추가로 지연될 가능성까지 점친다. 공사비, 인건비 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다 토지 보상 문제와 LH 용역 중단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사업 추진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LH는 올 하반기 중 3기 신도시 6개 지역에서 총 6000여억원 규모 조성 공사를 발주할 계획이었지만 경찰 조사가 전국 단위로 확대되고 있어 제때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신도시 입주가 늦어지는 풍선 효과로 주변 지역 매매·전세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경고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3기 신도시가 연기될수록 사업비는 더욱 불어나고, 이는 본청약 때 분양가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며 “결국 내집마련 수요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3기 신도시뿐 아니라 서울·경기 주요 지역은 확실히 공급 진도율이 이전보다 떨어질 것”이라며 “몇 년 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닥치면 집값이나 전셋값을 밀어 올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입주 지연에도 불구하고 사전청약 당첨자 지위는 유지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사전청약에 당첨돼도 본청약일 전까지는 얼마든지 다른 사전청약에도 신청할 수 있고, 재당첨 횟수에도 제한이 없다. 즉 본청약 전까지는 민간분양 아파트 청약 등 내집마련 시도를 하면서 ‘보험’으로 사전청약 당첨 자격을 유지해도 된다는 의미다. 다만 본청약 시점에 최종 입주가 확정되면, 그때부터는 재당첨이 제한되는 만큼 이전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
함 랩장은 “수도권 등 주요 지역 분양가가 과거보다 높아졌고 올 상반기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기존 주택을 매입하기에도 부담이 만만찮은 상황”이라며 “본청약과 입주 일정이 늦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공공주택은 여전히 민간주택보다 분양가 부담이 낮은 만큼 사전청약 자격을 유지하면서 급매물을 기다리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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