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 번? 영영 나락? 가격 떨어진 2차전지주
올해 국내 증시를 뜨겁게 달궜던 2차전지 테마가 9월 이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3분기 실적 부진 전망이 지배적인 데다, 최근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주식 시장 전체가 흔들리며 성장주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꺾인 탓이다. 그동안 주가를 떠받치던 개인 투자자마저 주식을 팔아치우는 상황에서 2차전지주가 다시 비상할 수 있을지 투자자 관심이 집중된다.
3분기 실적 부진 전망
2차전지는 올해 국내 증시를 이끈 테마다. 올해 1~8월 코스피·코스닥지수가 각각 14%, 37% 오르는 동안 KRX 2차전지 K-뉴딜지수는 무려 47% 상승했다.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포스코퓨처엠·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등 2차전지 관련 10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다. 특히 에코프로는 그야말로 광풍이 불었다. 이 기간 에코프로 주가는 무려 12배 뛰었다. 에코프로비엠(3.5배), 포스코퓨처엠(2.5배) 등도 8개월간 2~3배씩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9월 이후 2차전지 열풍이 차갑게 식었다. 지난 9월 1일부터 10월 12일까지 KRX 2차전지 K-뉴딜지수는 17% 하락했다. 코스피·코스닥지수가 각각 3%, 10%씩 빠진 것과 비교해 낙폭이 크다. 에코프로(-31%), 에코프로비엠(-22%), 포스코퓨처엠(-23%) 등 8월까지 주가가 급등한 종목이 올해 상승분을 대거 반납했다. KRX 2차전지 K-뉴딜지수 거래대금도 7월 한때 하루 20조원을 기록했지만, 10월 들어 단 하루도 2조원을 넘기지 못했다. 지난 10월 6일에는 지난 1월 후 처음으로 하루 거래대금이 1조원을 밑돌았다.
9월 이후 2차전지 테마가 급격히 식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2차전지 기업의 3분기 실적이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엘앤에프나 에코프로비엠 등 양극재 기업들은 제품 판가 하락이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원재료인 니켈, 리튬 등 가격이 떨어진 탓에 이와 연동되는 양극재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며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양극재 기업 실적 전망치는 하향 조정되고 있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전년 동기(1409억원) 대비 33% 하락한 940억원이다. 지난 7월만 해도 이 전망치는 1605억원이었지만, 3개월 만에 눈높이가 40% 이상 내려온 셈이다. 엘앤에프도 비슷한 상황이다. 엘앤에프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987억원)보다 61% 하락한 388억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7월 시장 전망치는 933억원이었으나, 3개월 사이 60% 가까이 하향 조정됐다.
배터리 수요가 감소했다는 점도 부정적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올해 7월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던 자동차 배출 규제 ‘유로7(Euro7)’ 도입을 연기하며 유럽 시장서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줄었다. 유럽은 국내 배터리 기업 매출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실적 악화 우려가 심화된다.
최근 고금리 장기화 우려에 증시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2차전지 주가에 부정적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는 반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는 악화된다. 특히 2차전지 같은 성장주에 대한 투자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요 확대에 따른 국내 기업의 부담도 주가를 끌어내린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두되는 2차전지 업종 위험 요인은 리튬 가격 하락에 따른 평균판매단가(ASP) 하락과 출하량 부진”이라며 “유럽은 보조금이 축소되고 북미는 신차 출시가 지연되며 수요가 둔화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한 우려와 실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현재 상황에서 급격한 투자 심리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결국 수요 반등이 주가 반등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타이밍’ 아닌 ‘가격’에 집중해야
2차전지 업종 주가가 단기간에 반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길게 보면 성장이 분명한 산업임에는 틀림없다는 데 입을 모은다. 내연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시대 흐름이라는 이유에서다. 단기적으로는 2차전지 업종 수요 둔화와 기업가치 부담으로 주가 하락 압력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침투율이 상승하고 국내 기업의 높은 경쟁력을 기반으로 주가가 우상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요 둔화 우려에도 여전히 시장 지표는 견고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기차 누적 판매 증가율은 미국에서 59%, 유럽에서 28%로 나타났다. 이는 연초 기대했던 수준에 부합하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4분기 중 리튬 가격 바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리튬 생산원가 밑으로 가격이 내려가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소재와 배터리 업체의 신규 수주 또는 증설 발표가 있다면 주가 회복 시기는 빨라질 것으로 내다본다.
정의현 미래에셋자산운용 상장지수펀드(ETF) 운용팀장은 “2차전지 업종의 장기적 성장성은 분명하지만 최근 단기 성장동력이 부재한 가운데 기업가치가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며 “이 시기를 버티고 미국 내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른 국내 2차전지 기업 매출 성장세가 실적으로 나타날 때 주가에 다시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투자 시 수급에 따른 ‘타이밍’보다는 ‘가격’에 집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비정상적인 주가 급등이 있었던 지난 7월만 해도 가격 부담으로 매수하기 어려운 기업이 많았지만, 고점 대비 최근 주가가 50% 이상 하락한 기업이 늘며 다시 가격 매력을 회복했다는 진단이다. 가격이 정상화되고 있는 만큼, 투자 시 이성적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하고 쏠림 현상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나증권은 2차전지 기업에 투자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3가지 조건도 제시했다. 첫째 권역별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고, 둘째 수직 계열화가 완성돼야 하며, 셋째 재활용(리사이클링) 순환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이 3가지 키워드에 부합하는 기업은 안정적인 실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이 해당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배터리 관여가 커지고 있는 완성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한 장비사에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이후 고객 다변화가 2차전지 종목 투자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특히 완성차 OEM 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장비사와 신규 셀 생산 업체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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