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32분 반박 "검찰이 땅을 파내 소나무 DNA 찾는 격"
“저 숲이 참나무 숲인지 소나무 숲인지는 딱 보면 아는 건데, 검찰이 DNA 분석기를 들고 숲속의 땅을 파내 소나무 DNA가 발견됐다고 외치는 느낌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자신의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와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관련된 두번째 공판에 출석해 32분간 해명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검찰이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금 사건 공소 사실 요지를 3시간 10분에 걸쳐 조목조목 짚은 뒤 오후 3시 47분경 발언권이 넘어오자 반박에 나선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은 이 대표와 그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배임) 등에 대한 사실상 첫 재판이다. 지난 6일 열린 1차 공판이 이 대표의 장기간 단식에 따른 건강 문제로 80분 만에 끝나자, 당초 4시간 분량의 프레젠테이션(PPT)을 준비했던 검찰은 가장 짧은 분량인 ‘위례 신도시개발 특혜’ 의혹 관련 공소사실만 설명하는 데 그쳤다.
이 대표는 갖은 비유를 들어 재판부에게 결백을 호소했다. “모든 개발이익을 다 회수해야 한다는 게 검찰 입장인데, 제가 공산당이 아니지 않나”, “제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부터 거의 매일 수사·감사를 받았어서 그때부터 저는 ‘어항 속에 든 금붕어’라 생각하고, ‘내 근처 있으면 벼락 맞을 수 있으니 절대 문제 생기게 하지 말아라’고 주변 공무원들에게 수없이 당부했다” 는 등이었다. 이 대표는 “검찰이 제기한 내용대로라면 제가 징역 50년 감인데, 저도 나름 법률가고 정치가인데 제 이름을 걸고 그런 이득을 챙기지 않았다”라고도 항변했다.
이 대표 변호인도 “성남시가 기초자치단체라곤 하지만, 규모는 100만이 넘는 광역시급이라 시장이 개개 부서는 물론 외부에 독립된 공사의 구체적 업무까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며 “170쪽에 달하는 공소장 어디에도 이 대표가 언제 어디서 (대장동 일당과) 공모 이뤄졌다는 것인 특정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일련의 검찰 행태는 현 정권과 하나되어 원내 제1 야당 대표를 무력화하려는 차원에서 기소한 것으로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반면 검찰은 대장동 개발 의혹을 ‘성남시장 치적용 범죄’로 규정했다. 검찰은 “이 대표는 성남시장 초선 당선부터 ‘돈 잘버는 시장이 되겠다’고 누누이 이야기했다”며 “그러나 성남시에 자금이 없고, 여소야대인 성남시의회가 도와주지 않자, 결국 민간업자들과 손을 잡고 정치적 도약을 위해 지자체 재산을 헐값에 매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장동 개발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유동규 전 성남 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과 공모해 대장동 사업에서 성남 도시개발공사가 받았어야 할 적정 배당이익(6725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확정이익 1830억원만 배당받게 하고 민간업자에게 4895억원의 이익을 몰아준 혐의다.
검찰은 이 대표의 ‘대장동 1공단 공원화 비용, 서판교 터널 개통비 등을 포함해 개발이익 5000억원을 환수했다’ 주장에 대해서도 “이 대표의 주장은 허위다. 사실상 공원을 만드는 비용은 아파트를 비싸게 주고 산 주민이 부담한 것이고, 치적만 성남시장이 거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한 정치 수사라는 이 대표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공소사실 어디에도 ‘국회의원’, ‘제1야당 대표’ 이런 단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또 검찰은 성남FC 후원금에 적용한 제3자뇌물제공죄의 동기와 관련해 “임기 중 프로축구단 창단 치적을 내세우려 성남FC 인수를 결정했지만, 곧이어 부도 위기에 직면하자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염려해 기업에 인허가를 내주는 대가로 후원금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이날 오전 10시 30분으로 예정됐던 재판은 이 대표의 지각으로 10여분 늦게 시작돼, 오후 8시 38분 경이 돼서야 끝났다. 검찰 모두발언(3시간 10분)→ 이 대표 발언(32분)→이 대표 측 변호인 발언(1시간 50분)→정 전 실장 측 변호인 발언(2시간) 순서대로 진행돼 재판 시간만 총 8시간 넘게 소요됐다. 이 대표 측은 자신들의 발언이 오후 6시 30분경 마무리되자 “정 전 실장 변론은 다음 기일에 이어서 하는 것으로 저희 변호인들끼리 의견을 모았다”고 건의했지만, 재판부는 “그럼 증인신문이 자꾸만 뒤로 밀린다”며 거절했다.
정 전 실장 측 변론에선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거센 신경전이 붙었다. 배임죄 적용의 전제를 ‘공사와 성남시는 시민들로부터 개발사업 인허가권을 위임받아 집행하는 관계’라고 밝힌 공소장의 내용에 대해 정 전 실장 측이 “우리 헌법은 국민대표제를 선택해 직접적 위임관계를 부정한다. 이런 검찰 발상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에서나 나오는 국기문란”이라고 정치적 비판을 가하면서 생긴 일이다. 검찰 측은 “기가 막혀서 가만히 들을 수가 없다”고 항의했고, 정 전 실장 측은 “위임이란 단어를 공소장에 현출하기 위한 검찰 측의 강박”이라며 변론을 이어갔다. 재판부도 “검찰에 대한 모욕적 발언”이라고 지적했지만 정 전 실장 측은 고성으로 “공소사실은 모욕적이지 않습니까”라고 따졌다.
3차 공판은 오는 20일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부가 매주 화요일과 격주 금요일에 재판을 진행하기로 방침을 정해, 이 대표는 때마다 출석해야 한다. 전날 기소된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재판도 같은 재판부가 맡게 되면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 및 성남FC 후원금 관련 재판과 백현동 의혹 관련 재판, 위증교사 혐의 재판까지 총 3건의 이 대표 관련 재판을 진행하게 됐다. 이와 별개로 이 대표는 27일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판에도 출석한다.
윤지원·이병준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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