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대 신설 요구 봇물…갈등 2라운드 이슈로 부상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공식화하면서 증원 인력의 배분 문제가 또다른 갈등 이슈로 떠올랐다. 2025학년부터 1000명씩 증원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면서 판이 커질 수 있다는 기대에 지자체가 술렁이고 있다. 의대가 없는 지역에선 신설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여기에 가세하는 양상이다. 기존 의대들은 정원 규모를 더 늘리기 위해 우선 배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남도의회는 18일 국회와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의과대 유치를 위한 상경 집회를 예고했다. 이들은 전국 시도 중 전남만 유일하게 의대가 없다며, 국립의대 신설을 촉구할 계획이다. 경남에선 창원시가 인구 100만명이 넘는 비수도권 대도시 중 의대가 없는 유일한 곳이라며 의대 신설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16일 실국본부장 회의에서 정부의 정책을 두고 “의대 신설보다 정원 확대 쪽으로 가고 있다”며 도 차원의 대응을 주문했다.
경북에선 안동과 포항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동시민들은 의사 부족으로 지역 의료 공백이 심해지고 있다며 지난달 9일과 이달 4일 의대 신설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를 연 바 있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의사 수·공공병원 설치율 모두 전국 평균 이하인 의료취약지”라며 “반드시 국립의대를 설립해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 쟁점으로도 옮겨가는 양상이다. 전남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얻으려는 목표는 단순히 의사 수 확대가 아니라, 부족한 필수의료·공공의료 기반을 확충하고 붕괴 위기에 처한 지역의료를 살리는 것”이라며 “전남권 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병행 추진하지 않으면 수도권 미용·성형 의사만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는 의대 신설이 비현실적이라며 부정적으로 본다. 의대 및 부속병원 설치에만 수천억원이 들고 수년간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교육 인프라가 갖춰진 기존 의대 자원을 활용한 정원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졸속 의대 설립은 운영 부실문제로 문을 닫은 서남의대 사태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우려다.
김미란 한국의학교육학회 교육 이사(아주의대 산부인과)는 “이미 교수진이 확보된 기존 의대에서 10, 20명씩 인원이 소폭 늘어나는 것이라면 별반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새로운 의대를 설립하는 건 다르다. 의대를 세우려면 기초, 임상의학 교수진을 확보해야 하는데 기초의학 교원이 최근 많이 줄고 있다. 병원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수요를 채우기 마땅치 않아 의학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다”라고 했다. 최석진 인제대 의대 학장은 “지금도 신임 교수 모집이 안 되는데 신설 의대에 교수 수급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서남대 의대는 교육 병원 등 시설과 교수진이 뒷받침 되지 않아 결국 폐교했다”고 지적했다.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식을 두고도 여러 의견이 나온다. 강윤식 경상대 의대 학장은 “지역 거점 국립대학 중심으로 인력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라며 “이 인원이 지역에서 수련 받을 수 있도록 지역 병원 수련의 정원도 늘려야 한다. 지역에서 계속 머물 수 있도록 장학금 등 여러 지원책이 정책 패키지처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 질을 높이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정원 50명 미만의 소규모 의대에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혜영 충북대 의대 학장은 “작은 규모의 대학이라도 교수 등 인력과 공간 자원이 갖춰져 의학 교육의 질이 우수한 대학들이 있다”며 “여기서 사람 수를 조금 추가한다고 교육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소규모 대학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황수연·채혜선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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