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산모들 '길바닥 출산' 위기…끝내 열리지 않은 라파 국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국경 통로의 개방을 둘러싼 관련국 사이의 합의가 불발한 가운데, 하마스의 새벽 기습 직후부터 약 열흘째 봉쇄 상태인 가자지구 주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외신들이 전했다. 국경 통행 재개가 미뤄지면서 주민들을 위한 유엔의 구호물자가 전달되지 못하고 있고, 피란길에 올랐던 이들이 닫힌 문 앞에서 밤을 새우며 대기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자지구의 의료 시스템은 의약품 부족 등으로 사실상 붕괴한 상태로, 일부 임산부는 '길바닥 출산'까지 감행하는 상황이다.
유엔 인도주의 사무국(OCHA)에 따르면 가자 지구 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응급 의약품과 연료를 실은 유엔 소속 차량들은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고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알 아리쉬 도로 주변에 대기 중이다. 라파 국경 통행로가 여전히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전날 민간인을 위한 물자 반입을 위해 일시 휴전하고 국경 검문소를 잠정 개방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무산됐다. 한때 미국·이집트·이스라엘 등이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보도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실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사메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로 구호물자 반입이나 제3국 국민의 출국을 허용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측은 인도주의 지원 물자로 위장해 무기 반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이어지는 중에도 라파 검문소 주변엔 국경 너머로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경에 모여든 사람들 다수는 외국인이거나 다른 나라 여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이다. 국경이 열릴 기미가 없자 탈출을 포기하고 이스라엘군이 대피령을 내린 가자시티 등으로 되돌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특히 출산이 임박한 여성은 의료 시스템의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엔 인구기금(UNFPA)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임산부는 5만명에 달한다. 병상 부족과 의료용품 고갈 등 의료 시스템이 붕괴한 상황에서 기본 처치도 받지 못하는 만삭의 여성은 길바닥 출산 위기에 놓였다고 유엔 관계자는 우려를 표했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남부 칸 유니스의 한 병원에서 이틀 전인 지난 14일 태어난 미숙아 쌍둥이 자매가 물을 구하기 힘들어 분유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만성질환자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 가자 지구 북쪽 가자 시티에서 칸 유니스로 탈출한 나헤드 알 쿠준다르는 신장 이상으로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하지만 전쟁 이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는 로이터통신에 "다리가 부어오르고 숨이 막히지만 별 도리가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유엔 인도주의 사무국(OCHA)은 가자지역 전역의 병원에 연료 비축량이 겨우 약 24시간을 버틸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이집트 적신월사 관계자는 "속히 라파 국경 개방이 승인되길 바란다"며 "우리는 언제든 구호품을 실어 나를 준비가 돼 있다"고 호소했다.
미국은 가자 지구 국경 통행의 재개를 위해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과 대화를 나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요르단 국왕, 이집트 대통령을 차례로 만나 인도주의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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