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국제정세 불안과 한국경제

2023. 10. 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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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에서도 전쟁이 발발하여 국제정세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한 상태이다. 중동의 화약고에서 터진 전쟁이니만큼 이해가 걸린 인접국가로 확전될 가능성도 있어 세계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유가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직후 급등한 이후 상승, 하락을 반복하며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만약 이란이 이 전쟁에 참전한다면 미국도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확전으로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20~30%를 차지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라도 된다면 유가는 폭등할 것이고 이는 세계경제에 큰 주름을 새길 것이다. 또한 수출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경제에 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충격이 되어 정부는 경제운용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 혼란의 시기를 버텨내면 세계는 보다 안정되고 한국경제가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은 훨씬 줄어들까.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고립주의를 선언한 이래 세계는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었고 미국 내 여론도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이다. 따라서 선거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현 바이든 대통령도 이 추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앞으로 세계 곳곳의 국제 정치·경제 역학 상 약한 고리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이는 국제 정세와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요 선진국은 자국의 공급망 안정성을 보다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이는 보호주의 장벽을 더 높게 세우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이는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경제로서는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은 세계경제의 추세이지만 세계경제의 뉴노멀로 정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자유무역주의의 쇠퇴라는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뉴노멀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경제를 국제정세 불안과 여러 외부충격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은 그 나라의 산업경쟁력이다. 높은 산업경쟁력을 유지해야 만 보호주의 장벽을 넘어 수출대상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높은 유가 등에 의한 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 상품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은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고 중국 등의 중진국은 국산화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타국 상품에 의해) 대체당하지 않고 (타국 상품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만 보호무역주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면 신문 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정책이슈는 금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나 등의 거시경제정책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금리, 재정 등의 거시정책변수는 경기안정화를 위한 정책도구이지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정책변수는 아니다. 물론 경기안정화도 정부의 중요한 정책과제이지만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성장과 생존은 산업경쟁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적재산권의 보호, R&D 인력의 육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규제개혁, 비용효율적인 산업단지의 조성 등 미시적 산업정책이 산업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보호주의의 파고를 극복할 수 있는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논의가 정치권에서 지금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권 소식은 정치공학적 정쟁이 대부분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세계경제 구조 변화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수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효율적인 산업정책의 입안은 쉽지 않은 과제이고 더구나 단기간에 정책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치권의 고민과 정책경쟁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혈세로 유지되는 각 정당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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