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법관의 양심... 이제 '국가의 시간'이다
[오동석]
지난 9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퇴임사를 통해 "사법부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는 길은, 사법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함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 보루의 역할을 합니다. 과연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 책임을 다하였는지, '김명수 대법원'의 주요 판결을 통해 평가하고자 합니다.
총 6회에 걸쳐 '김명수 대법원 특집 판결비평'을 연재합니다. 사법농단, 노동, 군인권, 여성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비평함으로써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대법원장의 교체 이후 새로운 대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 주심 김재형 대법관 2018.11.01. 선고 2016도10912
▲ 2021년 6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연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
ⓒ 연합뉴스 |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의 병역 종류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은 위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4인 합헌, 4인 일부 위헌, 1인 각하). 합헌 의견을 낸 2인 재판관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법원의 해석 문제라고 판단했다.
한편 대법원은 2018년 11월 1일 전원합의체 판결로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상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선고했다(대법원 2018. 11. 1. 2016도10912).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국회의 법률 제정을 통해 대체역 제도가 도입될 것이지만, 대법원 판례의 변화는 늦게나마 병역법 해석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점에서 인권 보장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헌법과 형사법의 법리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아니 헌법과 형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을 했다.
먼저 헌법 제19조에서 보호하는 양심은 이른바 '착한 마음' 또는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으로서, 개인의 소신에 따른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헌법재판소 2002. 1. 31. 2001헌바43)는 설명은 타당하다. 이러한 양심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대법원 2004. 7. 15. 2004도2965, 헌법재판소 2018. 6. 28. 2011헌바379 등)을 되풀이한 것도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런 접근 자체가 오류다. 개인의 소신이라는 양심 개념의 속성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국가기관이 판단하는 방식은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인지 그리고 '절박하고 구체적'인지는 양심의 영역이므로 개인의 판단 영역이다. 다만, 국가 또는 법원은 병역거부자가 자신이 주장하는 가치 판단에 비춰 '중대하고 명백하게 어긋나는 행동을 반복한 경우' 병역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이 유의해야 할 점은, 설령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따른 정당한 병역거부로 인정하기 어렵더라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을 형사처벌 하는 일이 바람직한가의 문제다. 다시 말하면 법원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양심적 거부자에 대해서도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놔야 양심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다.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누가 어떻게 입증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대법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은 범죄구성요건이므로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6도6445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 중대한 형사법상의 법리를 대법원은 뒤집는다.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으로 불가능한 데 비해 그 존재를 주장·증명하는 것이 좀 더 쉬우므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이 소명하는 자료를 제시하고 검사는 그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병역거부자가 제시해야 하는 소명의 자료는 적어도 검사가 그에 기초하여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성을 갖추어야 한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논리는 인간의 이해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점은 첫째, 양심은 가치판단의 문제이므로 물건처럼 존재 여부를 드러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둘째, 단지 증명이 쉽다는 국가 편의주의 발상에서 검사의 입증책임을 면하고 양심적 거부자에게 입증책임을 돌린 것이다. 셋째, 양심의 존재를 소명하는 자료에 대해 검사의 반증 가능성에 맞춰 구체성을 요구한 것이다.
▲ 2019년 8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전경. |
ⓒ 이희훈 |
대법원의 판결은 두 가지 점을 놓치고 있다. 하나는 양심 개념을 개인 내면의 문제로 고립해서 이해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다양한 종교와 사상에 그 배경을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헌법이 지향하는 평화주의 원칙과 군대라는 조직이 양립하는 모순 탓에 필요악으로서 군대를 거부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주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헌법적 의무다(헌법 제10조 제2문). 여기에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체복무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병역의 의무가 헌법이 지향하는 평화주의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이행되어야 하므로 국가는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병역과 무관하게 국가 또는 사회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실현하는 제도화에 실패한다면, 그 책임이 국가에 돌아가야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워서는 안 된다.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해야 한다. 이 조항은 헌법 규범에 따라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일에 양심을 걸고 재판하는 헌법적 책무를 법관에게 국민이 명령한 것이다.
대체역 제도가 도입됐지만,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대체역 복무로 편입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심판하고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 것이다. 이들의 거부는 개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야말로 헌법의 지킴이다.
이제 국가가 응답하고 설명하며 교정할 시간이다. 대법원이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기각 결정을 바로잡고 검찰의 기소에 통상적인 형사법적 입증책임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헌법과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충실함은 물론,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인정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보장할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정립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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