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가을을 지나는 시인이 그린 다정의 세계

안준철 2023. 10. 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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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 를 읽고

[안준철 기자]

손목
 
술집에 앉아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통해 손을 잡아가다가
눈앞의 손목이 마치 어디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 같아서
인간의 마음이 들고 나는 주택가 골목 같아서
 
늘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 하던
내 손목을 바라보고 있다

- 김영춘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애지시선, 2023)
 
김영춘 시인은 내가 은퇴 후 고향인 전주로 돌아와서 7년째 유일하게 만나는 남자다. 우리가 자주 접선하는 곳은 건지산 단풍나무 숲인데, 그의 다정함과 나의 밝음이 빚어내는 화음이 단풍나무 색깔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 것이다.
 
▲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 표지  김영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
ⓒ 안준철
 
그가 두 번째 시집 이후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간격은 무려 20년이다. 그가 정양, 안도현, 박남준 등 선후배 시인들로부터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라는 평을 듣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그 말이 함의하는 바가 아무리 긍정적이라도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한 곡절까지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한 가지 일에 매달리면 다른 일은 손이 잘 안 가는"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손이 잘 안 가는 일은 시를 쓰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 그가 매달려야했던 한 가지 일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이 말을 먼저 해야할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도 시를 쓰는 그 한 가지 일에 매달리고 싶었을 것이라고. 그로 하여금 시를 쓰는 일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서 밀어낸 일의 실체에 대해서는 길게 쓰지 않겠다. 다만, 그가 20년 넘게 지역의 교육과 청소년들을 위해 애써왔다는 사실만 말해둔다.

김 시인은 "버릴 수 없으니 품고 가게 되었다. 버릴 수 없었으니 덤덤하게 별것 아닌 것처럼 덤덤하게 적어 갔으면 한다('시인의 말' 중에서)"라고 적고 있다. 그나저나 시인은 왜 자꾸만 남의 손목을 잡으려 하는 것일까? 물론 그의 다정함 때문이겠다. 그 다정함으로 인해 시인은 "사과를 따는 손가락의 힘이/사과를 눌러 멍들게 할 수 있다는 말"을 흘려듣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과 알을 스치며 손가락의 끝을 느끼는/농사짓는 사람의 정성도 정성이려니와/봄여름 가을볕 비바람 아래서/날마다 스스로를 두껍게 하여 살아온 껍질이/끝내는 제 안의 여린 속살을 지킬 수 없었다니/마음이 아려왔다('손가락 끝에 매달린')"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정도면 다정도 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다정함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의 덤덤하면서도 섬세하고 구체적인 시적 진술을 따라 가볼 필요가 있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손을 잡았다/십 분쯤 잡았을까/이십 분쯤 잡았을까/잡은 손에 가만히 힘을 주어보기도 했다/이제 웬만하면 손을 놓아야할 것 같은데/원래 같이 있던 손처럼 편안해서/쉽게 놓지 못한다/굵고 거친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기운이 가득하다/농민운동으로 늙은 손이다/투쟁이 사랑에 이른 손이다/이렇게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손은/도대체 얼마만인지 알 수가 없다/차를 내릴 때까지 내내 놓지 못했다/송병주 의장의 거칠고 두꺼운 손이다. - 시 <놓기 어려운> 전문
 
중요한 것은 이렇듯 남을 손을 잡고 싶어 하는 시인의 마음이 자신의 손목으로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인용한 "늘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 하던/내 손목을 바라보고 있다"는 시구를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다정함은 자신에 대한 연민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시인은 어느 날 "경마장 근처를 지나다가 늙어가는 말을" 본다. 마침 겨울이었다. 시인은 그 늙어가는 말에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벌판을 달리고 콧김을 내뿜은 시간을 뒤로 한 채/제 스스로의 마구간 안에 홀로" 서 있는. "천천히 몇 걸음씩 오가며 자신을 느끼고" 있는.

"그 모양이 괜찮았다"고 시인은 술회하고 있다. "오래 보고 있노라니 점차 아름다워지기까지 했다"라고도 말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시적 표현들을 따라가 보자. 한때는 바깥을 서성이기도 했을 자신에 대한 연민의 발자국들이 어디쯤에서 "그 모양이 괜찮은" 다정함으로 뒤바뀌어 "나를 따라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가까이 가서 몸을 기대고 싶었다
그제서야 나도 서 있는 짐승이었다
그제서야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싸락눈이 서걱이는 그런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바깥을 서성이던 발자국들이
나를 따라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 시 <서성였네> 부분
 
내가 여름 내내 찾았던 전주 덕진연못에서 자전거로 오 분쯤 달려가면 오송지라는 작은 방죽이 나온다. 거기에도 연꽃이 핀다. 올해는 태풍 영향 때문인지 연꽃이 거의 피지 않았다. 김영춘 시인이 거기 다녀와서 쓴 시가 눈길을 끈다.
 
장마 끝나고 태풍 두어 개 지나간 뒤/건지산 오송지에 피어난 연꽃//느즈막에 피어 났으니/오늘처럼 앳된 얼굴로 늙어갈 것입니다//문득 가을바람이 불어와/사는 일 쓸쓸한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하여도//햇빛은 온 세상에 고루 반짝이며 부서져/다시 살아나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저 어린 것이/동무도 없이 너른 물결 위에 남아/가을을 맞아들이며 홀로 피었는데//나는 고작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다른 말귀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시 <여름 끝자리에 핀> 중에서
 
시집 해설에서 복효근 시인은 "이 다정하고 웅숭깊은 염원 앞에서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귀가 없다"고 적었다. 또한, "시인의 다정은 어느 정도 페이소스가 그 배후로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소한 일상의 어떤 사물에 관한 것일 지라도 곧 보편적인 인간사와 사회의 맥락으로 확장한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한다.

김영춘 시인과 내가 사는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전동성당에 있고/경기전이 있"고 "심지어는 동학혁명기념관이 있('산책')"다. 그리고 동학혁명기념관 앞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늙어가면서/전봉준 김개남 이런 사람들의 눈빛을 지켜보고 있는데/무너지는 몸을 겨우 이기는 그 곁으로/열대여섯 살쯤 됐을까/싱그러운 어린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다정한 것에 대하여)"있다. 나도 한옥마을에 갈 때마다 여러 번 본 광경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휙 둘러본 것이 다였다. 김영춘 시인은 달랐다.

"요즘 식으로 유전자를 따라가 봤더니/늙은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한다/아비도 없이 어찌 아이만 남았을까/우금치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돌아오지 못한 것일까"라고 궁금증을 품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 나라의 슬픔으로는/아비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에/어린 것이 어미 곁에 홀로 서 있는 정도는 되어야/인간사의 다정이 제대로 피어나는 것인가/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비감과 함께 다정함에 대한 심사를 드러낸다.

김영춘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다. 글 말미에 이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아직 소개하고 싶은 시가 남아 있어서다. 이 시는 시집에서 드물게 행갈이 없이 산문투로 되어 있다. 읽어보니 이해가 된다. 시의 형식으로는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가권력이 선생 1500여 명을 한꺼번에 쫓아낸 전대미문의 일이라서가 아니다.

문제는 뜻밖에도 보충수업이었다. "쫓겨난 선생의 처지를 아랑곳 않고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던 철없는 것들"이 더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밤이나 낮이나 보충수업만 시키면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인은 자신을 "쫓아낸 학교에 다시 나가서 그해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하고" 만다. "쫓겨난 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수업을 하고 있으니 귀를 쫑긋 세우고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어찌나 잘 들어주던 지" 시인은 "해직의 처지인지 복직의 처지인지 모를 몽롱한 정신으로 그해 여름을 보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시는 이렇게 끝이 난다. 
 
"약력란에 비어 있는 시간에 (전교조 해직교사라고 쓸까 말까를 생각하다가) 끝내 쓰지 못하는 시대를 쑥스럽게 살아가면서 이런 기억은 이유도 없이 왜 떠오르나. 아마도 노란봉투 안에 담긴 보충수업비 앞에서 떨리고 말았던 내 어깨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내에게 잠시 기대고 말았던 내 어깨 때문은 아니었을까." - 시 <떨리고 말았던 어깨 때문에> 중에서
 
1988년 <실천문학> 복간호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영춘 시인은 "요즘은 시만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나날이라 이번 세 번째 시집과 네 번째 시집의 간격은 조금 좁혀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내다본다"고 말한다.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저는 저에 대한 애착이 아직도 과해서 저의 시를 안쓰러워합니다. 전에는 시적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사인 시인은 추천사(표4)에서 "그는 사람 손을 꼬옥 잡기를 좋아한다. 숨은 다정이 속 깊이 있고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에게 몇 번 손을 잡힌 적이 있다. 다음에 만나면 나도 "마치 어디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 같은" 그의 손목을 슬그머니 잡아보고 싶다. 김영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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