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 수송기에 이스라엘 일본인 태운 이틀 후... 일본이 또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10. 1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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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거듭된 야스쿠니 참배에 담긴 반미 코드

[김종성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에 고립됐던 우리 국민을 비롯한 현지 체류자들이 14일 밤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우리 공군의 KC-330 '시그너스'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날 군 수송기를 통해 한국에 도착한 인원은 한국인이 장기 체류자 81명과 단기 여행객 82명, 일본인과 일부 일본인의 타 국적 배우자 등 51명, 싱가포르인 6명이다.
ⓒ 연합뉴스
 
우리 군 수송기가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서 싱가포르인 6명과 일본인 51명도 함께 태우고 서울공항에 도착한 지 이틀 뒤인 16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대신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10월 17일 시작하는 가을 정례 제사인 추계 예대제에 맞춘 참배다.

니시무라 대신은 한국과의 선을 긋는 발언들로 언론매체의 관심을 끌었다. 일례로, 지난 5월에 한국 시찰단이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하기 전에 한국 대통령실은 '한·일 공동 검증'을 예고한 데 반해, 니시무라 대신은 그달 9일 기자회견 때 '한국 시찰단의 방문 목적은 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확인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이번 시찰로 한국 쪽에서 이해가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한국 시찰단의 방문 목적을 사실상 '견학'으로 한정한 것이다. 그랬던 그가 야스쿠니 참배로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니시무라 대신은 개인 자격에 의한 참배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를 니시무라 개인의 일로 보도하는 언론매체는 없다. 다들 일본 각료의 참배로 보도할 뿐이다.

1985년 8월 15일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공인 자격으로 참배한 이후로 남북한과 중국 등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것이 일본 외교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각 대신이 총리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참배를 강행하기는 힘들다. 각료의 참배는 총리의 뜻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거듭되는 양보가 기시다 총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이런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윤 정부의 거듭된 양보에도 계속되는 야스쿠니 참배
 
 신도 요시타카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이 17일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를 맞아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귓전에서 멀어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 귀에 들어와 꽂혀 있는 게 바로 이 야스쿠니 참배 뉴스다. 올해 춘계 예대제가 시작된 지난 4월 21일에는 국회의원 87명이 단체로 참배했고, 기시다 총리는 공물을 헌납했다. 패전일인 8월 15일에는 '다함께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70여 명이 단체로 참배했다. 이때 기시다는 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료를 헌납했다.

자신의 참배를 통해 한국군 수송기의 공헌을 무색케 한 니시무라 대신은 다소 튀는 편이다. 그는 지난 8월 15일에 참배하지 않고 엿새 뒤 따로 참배해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작년에도 패전일 사흘 전에 참배했고, 이번에는 추계 예대제 전날에 참배했다.

일본 내각이 이처럼 총리나 각료의 참배를 통해 야스쿠니 이슈를 계속 끌고가는 것은 전사자 유족들과 더불어 극우세력이 계속 추동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1년에 출범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래로 일본 정치가 극우의 길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치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이슈는 앞으로 강해지면 강해졌지 수그러들 가능성은 별로 없는 쟁점이다.

그런데 이 사안은 북일관계나 중일관계는 물론이고 한일관계에도 계속해서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금 진행 중인 한미일 군사협력에도 지장을 주면 줬지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는 이 딜레마를 안고 대외관계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묘지는 도쿄도 치요다구에 있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다. 이것과 별개의 민간 종교법인인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이 제국주의국가로 전환된 뒤인 메이지시대(1867~1912) 이후로 일왕(천황)을 위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합동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여기서 합사를 받으려면 일왕을 위해 싸웠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다. 1868년 보신전쟁(무진전쟁)과 1877년 세이난전쟁(서남전쟁)의 경우, 이 두 건의 내전에서 전사한 모든 군인이 합사되지 않고, 보신전쟁 때 일왕파(천황파)에 가담한 군인과 세이난전쟁 때 정부군에 가담한 군인만 합동 제사를 받고 있다.

이처럼 일왕을 위해 희생된 군인들이 합사돼 있고, 그 대부분은 해외 침략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이다. 246만 명을 넘는 합사자 중에서 내전(보신전쟁+세이난전쟁) 참여자는 1만 4722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만 침공, 강화도 사건,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의화단사건,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지난사건(중국 제남사건), 나카무라 대위 사건(만주에서 발생),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가담자들이다.

합사된 사람의 대부분은 일반 민중이다. 이들 역시 일본제국주의의 피해자들이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가 이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억압과 착취를 받다가 전쟁에서 희생된 민중의 애환을 달래기 위함이 당연히 아니다.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권력에 충성하다가 전사하면 나라에서 이렇게 기억해준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그런 식의 민중 동원과 희생을 미화하는 곳이 야스쿠니신사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당국자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일본 민중을 무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침략 대상인 남북한과 중국을 자극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는 그뿐 아니라 미국인들의 감정 역시 은근히 자극하는 일이다. 대동아전쟁으로도 불리는 태평양전쟁 참여자 213만 명은 야스쿠니신사 합사자 246만 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영국 등과의 전쟁에서 합사자들이 대거 배출된 셈이다.

미일관계 딜레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5월 18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미일 양자 회담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히로시마 AP=연합뉴스
 
태평양전쟁 참여자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 외에, 미국을 자극할 만한 또 다른 요인는 A·B·C급 전범들의 합사다. 이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도쿄 극동군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침략전쟁의 희생자가 아닌 가해자임이 명백한 데다가 미국 주도의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은 도쿄 재판이 잘못됐을 뿐아니라 일본의 전쟁 수행 역시 잘못이 없음을 은근히 시위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1978년에 도조 히데키 전 총리 같은 A급 전범들의 합사를 주도한 마쓰다리아 나가요시 제6대 야스쿠니신사 궁사(宮司) 역시 그 같은 반미 코드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1978년부터 1992년까지 야스쿠니신사의 최고 신관이었던 그는 1992년 강연에서 자신이 A급 전범 합사를 주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6년 6월 <한일민족문제연구>에 수록된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의 논문 '야스쿠니 문제와 일본의 보수 정치'에 인용된 내용이다.
 
"나는 취임 전부터 모두 일본이 나쁘다고 하는 도쿄재판 사관(史觀)을 부정하지 않는 한, 일본의 정신 부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도쿄재판을 부정하는 의도로 A급 전범과 태평양전쟁 참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는 점은 미국 학계와 정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위 논문에 따르면 2006년에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격렬히 반대한 헨리 하이드 하원 외교위원장은 하원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고이즈미가 참배를 중지하지 않으면 미 하원에서 연설하게 둬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진주만 공격을 단행한 도죠 히데키 전 수상 등이 합사되어 있는 A급 전범에게 수상이 경의를 표한다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공격 직후에 연설한 장소인 미국 의회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된다."
 
앞으로 한미일 군사협력이 더욱 강화되고 3국 관계가 보다 밀접해지면,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관심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과 중국뿐 아니라 미국 국민들도 이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2019년에 <일본학보> 제120권에 실린 이기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야스쿠니 문제와 미일관계의 딜레마'는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흔드는 상황이 온다면 미일관계의 딜레마가 언제든 재연될 소지는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야스쿠니 문제가 미일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요소로 언제든지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는 미국과 직접적 관련이 없지만, 야스쿠니 문제는 미국과의 관련이 긴밀하다. 그래서 미국 뉴스에서 한미일 협력이 자주 보도되면 될수록 이 문제에 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한미일 협력관계뿐 아니라 미일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하다.

윤석열 정권은 그런 위험성을 제거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한미일 협력체제에 용감히 뛰어들었다. 그로 인해 한국 국민들까지 덩달아 삼각체제에 끌려가고 있다. 야스쿠니 문제가 한미일 관계와 미일관계를 언제든지 흔들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사전 대비도 없이 한미일 협력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은, 이 협력의 당위성 여하를 떠나 윤 정권이 국민의 안위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한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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