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와 탈북민도 징병? 제대로 된 징병제 논의가 필요하다 [넥스트브릿지]

하헌기 2023. 10. 17.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넥스트브릿지] 이제는 양성사회복무제를 고민해야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하헌기 기자]

 육군 36사단 새해 첫 신병교육 수료식(자료사진). 2023.2.1.
ⓒ 연합뉴스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현재의 병역법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해당 조항의 합헌 결정은 2010년, 2014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라고 한다. 하지만 헌재는 "장기적으로는 출산율의 변화에 따른 병역자원 수급 등 사정을 고려해 '양성징병제'의 도입 또는 '모병제'로의 전환에 관한 입법논의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밝혔다.

헌재가 밝힌 것처럼 현재의 병역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1959년에서 1971년까지 한국에는 매해 10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났다(1965년에는 약간 미달). 심지어 1982년까지도 80만명 선이 유지됐다. 지금 입대하는 자원들이 태어날 시기인 2001~2003년에도 50만 안팎이었다. 한해 출생아 수 40만 명은 2016년까지 유지됐다. 그러나 2023년에는 25만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100만이 태어나던 나라에서 25만으로
 

급격한 출생아수 감소는 한국 사회에 단계적인 충격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가령 현재의 초등학교는 40만명씩은 태어나던 2016년까지의 출생자로 지탱되고 있다. 이미 우리 기억 속의 초등학교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데, 7년 후엔 지금 정원보다 약 40% 정도 줄어든다. 현재의 저출생 추이는 쉬이 반전될 것 같지 않으며, 아직 바닥조차 찍은 것 같지 않다. 올해의 수치가 내년에도 유지된다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란 것이다. '남성만 군대에 가는' 징병제는 이미 예정된 파탄의 길에 놓여 있다. 닥쳐온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의무다.

이미 국방부는 부족한 현역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예전 같으면 면제나 공익이 됐을 이들도 현역으로 징병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현재 면제 대상인 고아와 탈북민들까지 징병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회자되었다. 이런 식의 임시방편으로 순간순간 문제를 땜질하는 식의 대책은 조롱을 유발할 뿐이다.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에 대해, 결과적으로는 군대를 모병제로 전환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는 직업군인 수급도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군 간부 지원자는 2016년 총 10만 9천 명에서 2020년 8만 명으로 오히려 약 26%나 줄었다. 사관학교와 ROTC 지원자가 줄고, 사관학교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장교나 부사관이 되더라도 장기 복무 신청자가 줄어드는 등 모든 영역에서 군인 충원은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는 군무원 충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동안 한국에서 직업군인이 그나마 매력적인 선택일 수 있었던 이유가 '징병제 사병의 열악한 처우'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끌려가서 일정 기간을 보내야 할 군대라면 장교나 부사관으로 가서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것이 더 매력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징병제 사병의 급여가 현실화되자 복무기간도 더 긴 군간부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직업이 됐다. 모병제 전환은커녕 현재의 군간부 인원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처우 개선을 논의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이 지극히 어려운 이유
 
 서울의 한 터미널 인근에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1.10.25.
ⓒ 연합뉴스
 
한국이 유지해야 할 적정 병력 규모를 얼마로 산정해야 하느냐도 문제가 된다.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 규모를 판단하면, 그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효율적인 제도적 방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국군은 '60만 군대'라는 관용어구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현역 자원 감소로 50만의 규모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향후 인구구조 때문에 이 규모가 유지될 수 없다면 제도적으로 가능한 하나의 방책 중 하나는 예비군의 동원이다. 즉, 상비군 규모는 줄이되 예비군 전력을 내실있게 강화하여 전시엔 예비군 동원으로 필요한 병력 규모를 충당하자는 발상이다. 그런데 예비군을 강화하는 길은 모병제와는 정반대 방향에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게 가능한 길이 모병제 전환보다는 징병제의 개편에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다.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미국처럼 모병제를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은 인구가 3억 4천만에 이르며, 상비군 규모는 140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보다 인구가 7배 가량 많으니 한국에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면 미군 수준의 직업군인 처우를 보장한다 해도 20만 정도의 병력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예비군의 활용폭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든다. 우리와 같은 징병제 국가였다가 몇 년 전 사실상 모병제로 전환한 대만은 2300만명의 인구에 18만의 병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역시 인구 규모로 보정해보면 우리로 치면 36만의 병력을 모병제로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대만에선 다시 징병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천혜의 자연환경 탓에 본토 침공의 걱정을 거의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며, 방대한 규모의 육군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대만 역시 섬이라서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된다 해도 상륙작전을 저지할 수 있는 정도의 병력이 필요할 뿐이다. 분단국가로서 휴전선에 병력을 배치해야 하는 한국과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게다가 북한을 핵무기 이외 재래식 무기에선 별로 위협적인 국가로 치지 않더라도 그 너머엔 세계적으로 강대한 육군을 지닌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전쟁위기의 시대에 한국이 섣부르게 병력 규모를 축소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즉, 미국식으로 하면 20만, 대만식으로 하면 36만의 병력 규모는 우리에게는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모병제 전환이 사실상 한국에게는 '갈 수 없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맥락을 고려할 경우, 시간이 갈수록 남성만이 병역의무를 짊어지는 현재의 징병제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지금 추세처럼 사병 임금이 상승할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여성들의 불만이 커질 여지도 존재한다. 지금도 남성들은 1년반의 군복무만으로 1천만원이 넘는 돈을 모아서 나올 수 있다. 임금이 더 상승하면 가까운 장래에는 전역할 때 2천만원이 넘는 돈을 쥐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경우 징병은 예전처럼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청년층에게 보편적으로 사회생활의 시드머니를 지급하는 일종의 사회적 상속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군복무가 차별인지 특혜인지 분간이 어려워지는 새로운 국면이 올 수 있다. 따라서 의무와 보상을 적절하게 조합하고, 그것을 보편적으로 확대하는 징병제 개편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길일 수 있다.

'여성징병'을 위해 필요한 선행조건들
 
 2017년 9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7주년 여군 창설 기념식에서 표창 수여자들이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까지 한국인들은 여성징병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임을 알 수 있다. 리얼미터의 지난 7월 조사에서 여성징병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54.9%, 찬성 의견은 36.3%로 반대 의견이 상당히 더 많았다. 그런데 반대 의견은 남성이 56.3%, 여성이 53.4%였기에 남녀 격차는 별로 크지 않았으며 오히려 남성의 반대가 더 높았다.

연령 분석까지 결합하면 여성징병에 대해 가장 큰 거부감을 가진 세대는 40,50대 중년 남성들이었다. 청년세대에선 성별 불문하고 여성징병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실제로 이 문제에 관해 널리 대화를 해본 내 경험을 돌이켜봐도, 오히려 20대 여성들은 장래에 여성징병제가 필요할 수 있음을 납득하는 경우들이 꽤 있었는데, 중년 남성들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물론 이들의 의견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한해 80만에서 100만이 태어나던 본인들 세대의 경험에 의한 인식을 현재의 문제에 다소 안이하게 투영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좀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고 논의할 경우 여론이 바뀔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여성징병, 즉 보편적 군복무를 고민한 바 있다. 이스라엘 모델보다는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모델을 참조하여, 한국 사회에서 양성이 동등한 의무를 짊어지되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는 방책을 강구하면서, 여성징병을 통해 군대를 좀더 합리적인 조직으로 만들어내는 방안까지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여성들을 준비없이 당장 입대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 사병의 존재를 아예 고려하지 않은 시설의 문제도 있지만, 시설은 만들면 되는 반면 군내 부조리에 대처하는 제도 개혁이 더 큰 문제다.

최근 흥미롭게 보는 유튜브 컨텐츠 중에 "뷰티풀너드" 채널의 <징병남녀> 시리즈가 있는데, 애초부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징병제 군대에 가는 세계관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성군기 위반과 가혹행위가 주된 소재이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경험한 현실의 군대에 남녀문제까지 포개질 때 나올 수 있는 양상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묘한 현실감을 느끼면서 작중 상황에 분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는데, 여성까지 징병되는 군대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일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직업군인에 여성이 포함되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공군 이예람 중사 자살 사건처럼 성추행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 생긴 비극적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여성징병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라도 평시 군사법원 폐지와 군 옴부즈맨 제도(국회를 통해 임명된 조사관이 공무원의 권력남용 등을 조사·감시하는 행정통제제도)의 실행 등이 선행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겪은 고난의 문제만 보더라도 현재의 우리 군에 있어 이러한 제도개선은 필수다. 여성징병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리면서 더 합리적인 징병제를 향한 제도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편적 사회복무제,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것
 
 2020년 10월 26일,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린 가운데 입교생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현실적으로 여성징병이 곧바로 '남녀 동등한 비율의 전투병력 편성'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 남성의 병역 의무 수행방식도 현역, 공익, 대체복무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체복무 제도의 인권존중적 취지를 후퇴시키지 않는 개편이 필요하다. 좀더 넓은 문맥의 사회복무제의 틀에서 이 의무들을 수렴하여 재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여성들은 제도 시행 초창기에는 대부분 대체복무의 틀에서 편입된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망자들 중심으로 현역 자원에 배치되는 이들의 비율도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의 대체복무는 주로 교도소 교정 업무에 배치되어 있는데, 초고령화 사회로 돌봄노동 수요가 늘어나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더 다양한 대체복무 제도의 수요도 있을 것이다. 현역, 공익, 대체복무 제도 사이에선 뒤로 갈수록 기간은 길어지고 임금은 박해지는 식의 차등적 인센티브를 설계하면 공정성의 측면에서도 시비가 걸릴 일이 없을 것이다.

징병제는 여러 가지 단점도 있지만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모병제에 비교할 때 지니는 뚜렷한 장점도 있다. 모병제 군대는 결국에는 '빈자들의 자식'을 군대에 배치되게 된다.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군인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지 않게 되며, 군부대의 전쟁 개입이나 해외 파병 등에도 덜 민감하게 반응하게 한다. 징병제 군대는 군대라는 필요악을 모두가 함께 짊어지는 의무로 사고하게 되고, 그들의 처우 문제를 '우리의 아들'(여성도 징병될 경우 '우리의 아들, 딸')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한다.

지금까지 한국군이 징병제의 그런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는 운영을 해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향후에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구절벽의 상황, 이민을 장려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근미래에서 이주민 2세대 자녀들이 평등한 사회복무의 의무를 짊어지면서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통체험을 형성하게 된다면 사회통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시급하고도 필요한 문제를 정치권에서 다뤄야만 한다. 

*필자 소개: 하헌기는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으로, 뉴미디어와 기성 언론을 넘나들며 정치 사회 의제에 대해 논의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공저로 <추월의 시대>를 썼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상근부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사회 문제에 관한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논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