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부진에 자금 조달 ‘빨간불’…유상증자 발행가 낮춰도 흥행 부진

박형수 2023. 10. 17. 10: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 코스닥시장 본격 하락
2021년 발행한 전환사채, 조기상환 청구 시기 도래
증자 규모 줄어 채무상환·투자계획에 차질 빚어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가 커지면서 코스닥시장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외부 감사를 앞두고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장사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주주가치 희석을 무릅쓰고 주주배정 증자에 나섰지만 주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계획 대비 자금 조달 규모가 줄었다. 과거 발행했던 전환사채에 대한 조기상환 청구가 이어지고 있어 채무 불이행 우려도 커지고 있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지수는 지난 8월 말 대비 12.7% 하락했다. 900선을 웃돌던 지수는 지난 10일 장중 한때 800선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올 상반기 이차전지 관련주를 앞세워 600선에서 900선까지 40%가량 오른 것과 대비된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매수 우위를 보이던 외국인은 지난달부터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매도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달러화 강세"라며 "3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3분기 실적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이차전지와 인공지능(AI), 로봇 관련주에 대한 차익실현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점도 시장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 상반기 코스닥시장 상승을 이끈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13일 기대치를 밑도는 3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졌지만 이익 증가 속도는 예상보다 더딘 것으로 확인하면서 성장주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약해졌다. 더구나 이·팔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도 강해졌다.

코스닥시장 부진으로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상장사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상한 것보다 조달 규모가 줄어들면서 부채상환과 투자계획을 수정한 상장사가 적지 않다. 일부 상장사는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차질이 생기면서 감사의견 '적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유전체 분석 업체 EDGC는 운영자금과 채무상환 자금을 마련하려고 주주우선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18일 이사회 결의 당시 예상한 신주 가격은 1208원이었지만 최종 발행가는 929원으로 낮아졌다. 조달 규모도 894억원에서 687억원으로 줄었다. 두달새 EDGC 주가가 40% 하락한 여파다.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 구주주 청약을 앞두고 전날 주가는 930원으로 떨어졌다. 신주 발행가 수준까지 주가가 하락하면서 청약 흥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구주주 청약에서 실권주가 발생하면 오는 24일부터 이틀 동안 일반 공모 청약을 진행한다. 주관사인 KB증권과 잔액 인수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공모 청약에서도 실권주가 발생하면 미발행 처리한다.

EDGC는 신주 발행가를 확정하면서 자금 사용계획을 수정했다. 200억원 이상 예상 조달 규모가 줄어들면서 연구개발(R&D) 예산과 글로벌 마케팅 비용, 일반경상비 등에 대한 계획을 축소했다. 채무상환 자금 365억원에 대한 계획은 유지했다. 2021년 10월과 12월에 발행한 전환사채에 대한 조기상환 지급일이 올 4분기에 돌아오는 것을 고려했다. 회사 측은 현재 주가가 전환가를 밑돌고 있어서 조기상환 청구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했다. 전환사채 잔액은 365억원이다.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이 부족하면 차입금 상환 연장, 지급 연장 등을 논의해야 할 수도 있다. EDGC는 올 상반기에 매출액 518억원, 영업손실 49억원을 기록했다.

EDGC뿐만 아니라 최근 구주주 대상 공모주 청약을 마친 피플바이오와 레몬 등도 당초 계획보다 자금 조달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레몬은 지난 7월20일 신주 500만주를 주당 3930원에 발행해 197억원을 조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차 발행 예정가가 3215원으로 낮아졌고 최종 발행가는 2550원으로 확정했다. 구주주 청약에서 실권주 61만주가 발생했다. 실권주는 일반 공모 청약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한다.

피플바이오도 구주주 청약률 90%를 기록했다. 신주 발행 가격이 계획보다 40% 낮아지면서 조달 규모가 줄었고 실권주가 발생했다.

레몬과 피플바이오는 유상증자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줄면서 운영자금 계획을 수정했다. 계획했던 채무상환 규모는 유지했다. 레몬은 조달 자금 가운데 31억원은 채무를 상환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활용한다. 이사회 결의 당시에는 운영자금 예산을 161억원 배정했지만 발행가를 확정한 후 94억원으로 줄였다. 피플바이오는 175억원을 채무를 상환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알츠하이머병 조기진단 키트의 국내 채널 확장과 해외 진출하는 데 사용한다. 피플바이오는 2021년 발행한 전환사채에 대한 조기상환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주가 하락으로 전환가 밑으로 떨어지면서 투자자가 조기상환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2021년 발행한 전환사채에 대한 조기상환 지급일이 도래하는 상장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외부감사를 앞두고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자금 조달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상장사 관계자는 "기준금리 상승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커졌다"며 "규제가 강화돼 전환사채 사모 시장도 위축되면서 유상증자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장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로 전환사채를 발행하려 해도 규제도 많고 큰손 투자자도 줄었다"며 "외부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하는 상장사가 쏟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