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오류시장, 떡집 앞에 거울들 둔 이유
[김성호 기자]
▲ 성원떡집 오류시장을 지난 반세기 동안 지켜온 성원떡집 김영동, 서효숙 부부. |
ⓒ 김성호 |
십여 명의 참석자가 있는 주말 모임을 앞둔 아침, 서울 구로구 오류동역 앞에 있는 오류시장을 찾았다. 모임 구성원들과 먹을 떡을 사기 위해서였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앞에 거울들이 늘어선 점포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지난 반세기를 지켜온 성원떡집이다.
떡을 사서 상자에 담고 값을 치른 뒤 떡집 사장 부부에게 영화를 잘 보았다고 인사를 건넸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 앞에 얼마 전 나간 영화평을 쓴 사람이라 소개했다. 그로부터 나는 환대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새삼 실감하였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평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 글이 저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 영화를 찍은 감독의 됨됨이가 어떠한지, 저들이 겪어왔고 또 겪고 있는 상황은 어떠한지를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충분한 시간을 두지 않고 찾은 것이 미안해질 만큼. (관련 기사 : 청년 다큐멘터리 감독이 40년 떡집 사장님께 배운 것)
신촌에서 있을 모임에 길을 한참 돌아가면서까지 이 시장을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다큐가 담고 있는 이야기, 내가 사는 도시의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 이 시대의 흔하면서도 흔치 않은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나는 이 다큐로부터 들었다. 이 글은 지난달 있었던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로부터 특별상 연대상을 수상하고, 뒷이야기를 붙여 새로 제작되고 있는 <오류시장>과 얽힌 이야기다.
▲ 오류시장 스틸컷 |
ⓒ 뉴스타파 |
명색이 영화평론가랍시고 잡지며 온라인언론에 글을 쓰지만 다큐에는 문외한이라 해도 좋았다. 말 그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뿐인가. 알지 못하니 좋아하지도 않았다. 어디서 본 몇 편의 영화가 편견까지 새기고 간 탓에,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인식까지 있었다. 가만히 보면 이것은 다큐가 받는 흔한 편견이 아닌가.
물론 편견에도 이유는 있다. 다큐가 극영화에 비해 재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반례가 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예외적 반례일 때가 많다. 자극적인 소재와 설정, 유명한 배우, 리드미컬한 편집, 화려한 사운드와 색감 등 다큐가 갖기 어려운 요소를 요즈음 극영화는 두루 갖췄다.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 극영화만이 아닌 거의 모든 콘텐츠가 다큐의 맞수가 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물론 인상적으로 본 다큐가 없는 건 아니었다. 홍형숙의 <경계도시2>를 보며 현실과 밀접하게 관계 맺은 영화가 제가 마침내 이르러야 할 곳으로 이끌리는 과정을, 선호빈과 나바루의 <수카바티>에선 그대로 사라져선 안 되는 무엇의 포착을 목격하였다. 이제껏 못해도 백 편은 훌쩍 넘을 다큐를 보면서 창작이 아닌 관찰자로서 주인공 곁에 진득하게 붙어 있는 카메라 뒤 다큐인들의 모습을 상상하곤 하였다. 제 마음대로 이야기며 캐릭터를 바꿀 수 없는 수동적인 입장에도 묵묵히 진실을 담으려 애쓰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하였다. 짧아도 몇 달을, 길게는 수년씩을 들인 작품이 넘쳐나는 다큐들 가운데 이들에게 그만한 성취며 보상을 안기는 작품이란 얼마나 드문가. 다큐에 대체 어떤 힘이 있다고 그토록 귀한 공력을 들이는 것인가.
올해 초 서울에서 반짝다큐페스티발이란 영화제가 열렸다. 다큐인들이 제 손으로 만든 다큐영화제로, 코로나19 이후 잠정 중단된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뒤를 잇는 축제로 기획된 것이었다. 말이 다큐인들의 손에서 기획된 것이지, 정부나 지자체 지원도 받지 못한 작은 영화제였다. 일회성 행사일지 존속될 수 있을지도 쉽게 내다볼 수 없는 이 행사를 전면에서 주도한 이들은 젊은 다큐인들이었다. 영화 두 편의 프로그램노트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찾은 영화제에서 나는 그들과 안면을 텄다. 그때 만난 이 중 하나가 최종호 감독이다.
짐작하기로 30대 중후반,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싶은 그는 선하고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를 지녔다. 하지만 어느 주제에 천착한 길고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 다큐인이라면 고집 또한 보통은 넘을 테다. 따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그 인상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하던 차에 꼭 반년 쯤 지나 그와 다시 만났다. 이번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DMZ국제다큐영화제 자리였다.
▲ 오류시장 스틸컷 |
ⓒ 뉴스타파 |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고, OTT 서비스 업체와 계약을 맺기도 쉽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가. 영화제가 아니라면 다큐를 볼 기회를 갖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의 경험은 세상엔 알려져야만 할 다큐가 많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런 연유로 찾은 또 다른 다큐영화제에서 나는 반년 만에 최 감독과 마주쳤던 것이다. 다큐를 보고 극장을 나서던 내게 "어? 혹시" 하며 그가 다가왔다. 그와 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내가 본 영화 중 몇이 그가 본 작품과 겹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헤어지기 전 그는 영화제에서 제가 찍은 영화가 상영된다고 했다. 폐막 전일이었다. 나는 일정을 바꿔 미리 예매한 영화 대신 그가 찍은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류시장>이었다. 서울 구로구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 인근에 위치한 1968년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 한때 200여 곳의 점포가 영업했던 이 시장이 이제는 폐업한 점포로 가득한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여전히 영업하는 십여 곳의 점포를 찾는 단골들이 꾸준히 있지만, 새로운 고객은 좀처럼 유입되지 않는다. 민간주도의 정비계획과 이를 저지하려는 상인들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며 일부 주민들은 상인들을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장의 사연을 제대로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최종호 감독이 수년 간 카메라를 들고 오류시장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일 테다. 구로FM 등 지역 언론이란 이름으로 시장에 남은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이 시장을 지키려 하는 이유를, 또 공공개발의 필요를 외치는 사연을 듣는다. 여기엔 시장 상인을 꼬드기고 도망친 어느 사기꾼 이야기가 등장하고, 어느 순간 나타나 시장 위에 주상복합 건물을 짓겠다는 업체가 등장하며, 공약을 뒤집으면서까지 손이 많이 가는 공공개발 대신 개발업체 주도의 민간개발을 반기는 공직자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서울시 시장정비사업 규정을 어겨가며 지분 쪼개기 편법을 쓴 개발사업은 법원 결정으로 무효화되지만, 업체는 곧장 정비사업을 재추진한다. 언론엔 오류시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거나, 주상복합으로 재정비된다는 비슷비슷한 기사가 쏟아졌다. 어느 누구도 시장으로 걸어 들어가 50년 넘게 터를 잡아온 상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카메라를 손에 든 청년 다큐 감독을 제하고는 말이다.
영화를 보고난 뒤 영화의 주인공 격인 떡집 주인 부부를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었던 것이다. 모두가 외면하고 듣지 않는 목소리를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다큐의 주제와도 닿아있는 것일지 모를 일이다.
▲ 성원떡집 김영동 사장이 오류시장에서의 지난 반 세기 역사를 증명하는 서류를 가리키고 있다. |
ⓒ 김성호 |
14일 아침 찾은 오류시장은 역시나 어두웠다. 아침 시간임에도 영화 속 떡집 주인아저씨의 말처럼 너무 어두워 거울을 잔뜩 늘어놓아야 했을 만큼 어두웠다. 문 닫은 점포들 사이 몇몇 가게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 영화 속 생생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가장 보통의, 성실하고 평범하며 선한 시민들이 일하고 있을 터였다. 그들의 탓이 아닌 이유로 평생을 바친 삶의 터전이 폐허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러나 끝내 떠나지 않고 자본과 개발의 바퀴 앞에 피켓을 들기로 한 이들 말이다.
떡을 사며 영화평을 썼던 사람이라 하니 주인 부부는 반색하며 글을 참 잘 보았다고, 고맙다고 하였다. 영화에도 나왔던, 많은 손님들이 거쳐 간 점포 안 따뜻한 자리에 나를 앉히고서 박카스 한 병을 내어주며 저들의 사정과 못다 한 이야기를 잔뜩 털어놓았다. 영화를 보셨느냐고 묻자 바로 이 점포에서 감독의 노트북으로 편집본을 한 번 본 것이 전부라고 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일이 바쁘기도 하였고, 또 워낙 저들에겐 마음 아픈 내용이라서 영화제를 찾거나 다시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찍은 최 감독이 얼마나 선하고 단단한 사람인지를, 용역들에게 들려 쫓겨나면서도 함께 자리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이야기 따위를 거듭하여 털어놓았다. 50년 넘게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한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여주고, 또 언론들이 이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거나 다루어도 한 쪽에 치우친 이야기만 하는 실태에 대한 언급들도 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기사가 저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를 말했다.
최 감독의 번호를 얻어 연락을 하였다. 수상을 축하하며 그의 상황을 물었다. 활동가로 하였던 마을방송 구로FM 활동은 잠시 접어두었다 했다. 현 시장이 들어서며 마을방송에 대한 지원이 끊긴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오가는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던 마을방송 제작은 그렇게 멈추었다. 대신 최 감독은 오류시장을 둘러싸고 다시 추진 중인 개발사업 진척상황에 따라 영화를 매만질 생각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오류시장>은 여적 진행 중인 것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편법과 부당함에 물러나지 않고 대항하면서도 저들 자신의 약함을 이야기하는 사장 부부의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 서민인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며 고작 글 몇 줄에 거듭 감사를 전하는 모습에 떠나는 발길이 무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작 글 몇 줄이 발하는 빛이 가진 힘을, 스스로 자주 무시하게 되는 그 소중한 힘을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도입부, 갈수록 어두워져가는 현실 가운데서 김영동 사장은 가게 앞에 여러 개의 거울을 두기로 결심한다.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손님들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다. 그는 가게가 뿜는 희미한 빛이 거울에 비쳐서는 골목까지 조금쯤 번지기를 기대했다.
그러고 보면 거울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빛을 전하는 일, 아무리 희미해도 귀하기 짝이 없는 그 빛을 어두운 골목으로 전하는 것이다. 다큐가, 또 이 미약한 글이 작은 거울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주 어쩌면 그 작은 빛이 정말로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지도, 구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십 수 년의 삶 가운데서 나는 그와 같은 광경을 몇 번쯤은 목격하였다. 때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있다. 바로 그런 광경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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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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