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1찍 엄마·3찍 딸…가족 갈등의 시작은 대통령 선거였다

서믿음 2023. 10. 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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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종교관은 같지만 정치색은 다른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의 4인 가족 이야기는, 봄-정희(엄마), 여름-하민(딸), 가을-동민(아들), 겨울-영한(아빠), 그리고 봄-정희(엄마)로 이어진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시점으로 쓰인 다섯 계절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현실적이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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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소설은 ‘제20대 대통령선거 이후’에 우리의 혼란한 정치가 한 평범한 4인 가족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다. 종교관은 같지만 정치색은 다른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의 4인 가족 이야기는, 봄-정희(엄마), 여름-하민(딸), 가을-동민(아들), 겨울-영한(아빠), 그리고 봄-정희(엄마)로 이어진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시점으로 쓰인 다섯 계절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현실적이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대통령 선거에서 1번을 찍은 엄마와 3번을 찍은 딸의 신경전, 1번을 찍은 아빠와 2번을 찍은 아들의 정치, 진로, 성정체성 갈등을 다룬다.

음식점 앞에서 하민이 동민과 따로 갈 데가 있다며 떠나고 부부만 남았을 때 정희가 중얼거렸다. “4인 가족이 이렇게 제각각인데. 대통령은 어떻게 하나. 나라를 가지런히 운영하는 건 당최 불가능한 거지.” 정희는 멀어져 가는 남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동민은 이제 추석에나 보게 되려나. 가만히 되짚어 보니 동민은 오늘 자기 아빠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고 말도 섞지 않았다. - p.24~25

가끔 새로운 골칫거리가 묵은 골칫거리를 밀어낸다. 어떤 이질적인 이슈가 다 른 심리적 이슈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는 일이 종종 있다. 이슈의 신진대사라고 할까. 유난했던 봄이었다. 딸은 정희에게 뒷골이 얼얼해지는 강펀치를 날렸고 동시에 살짝 흥분되는 자유의 순간들을 선사했다. 덕분에 그녀는 윤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잠시 잠시 잊을 수 있었다. - p.73

영한은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는 아들 앞에 망연자실, 앉아 있다. 뭔가가 다 깨지고 다 무너졌다. 가슴속이 삭막하고 눈앞이 자욱했다. 영한은 울고 싶어졌다. 하룻저녁 가벼운 대화로 아들과 화기애애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모처럼의 화통한 대화는 아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것이 작은 틈이 아니라 깊은 계곡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핸드폰 사건은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영한은 어깻죽지가 축 늘어졌다. 혐오의 팬데믹이 우리 사이를 너무 벌려놨구나. 이걸 건너갈 수 있을까. 이걸 메우는 게 가능할까. 당장은 아니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메워질 수 있는 골인가. 갑자기 이 사회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 p.250

“어딘가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나 봐.”

나무는 보이지 않지만 향기는 한참 더 따라온다.

“봄은 참 좋다.”

“그래, 봄은 좋아.”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죽은 땅에서 아카시아를 피워낸다. 정희는 중학생 때처럼 다시 명랑해지고 싶어진다. - p.332

그리고 봄 |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340쪽 | 1만6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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