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선 보인 '아시아쿼터' 3인, 누가 잘했나
[양형석 기자]
현재 한국 여자배구는 위기에 빠져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이후에 참가했던 최근 두 번의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에서 단 1승도 따내지 못했고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같은 국제대회에서도 원하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첫 경기에서 베트남에게 2-3으로 역전패를 당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5위에 머무는 등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17년 만에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의 부진과는 별개로 V리그의 열기는 여전하다. 지난 14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개막전이 열렸던 김천실내체육관에는 3491명의 관중이 모였고 15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와의 경기에도 1993명의 관중이 찾았다. 순위경쟁이 본격적으로 치열해지고 시즌이 무르익으면 더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시즌 V리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새로 도입된 아시아쿼터다. 이번 시즌엔 기존의 외국인 선수 외에도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된 한 명의 아시아 출신 선수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개막전에서 결장했던 흥국생명의 레이나 토코쿠를 제외한 3명의 아시아쿼터 선수가 배구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과연 시즌 첫 경기를 소화한 3명의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어떤 활약을 선보였을까.
▲ 도로공사의 아시아쿼터 타나차는 아직 공수에서 확실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다. |
ⓒ 한국배구연맹 |
2017-2018 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6시즌 동안 도로공사에서 활약한 박정아(페퍼저축은행)는 두 번에 걸쳐 도로공사를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출범 후 도로공사가 차지했던 두 번의 우승에는 모두 박정아가 중심에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후 3번째 FA자격을 얻은 박정아는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3억 2500만 원이라는 역대 최고액을 받고 막내구단 페퍼저축은행으로 이적했다.
박정아가 떠난 도로공사는 '공격력 강화'가 최대 과제가 됐다. 내부 FA 전새얀과 재계약을 했지만 전새얀만으로 박정아가 빠진 공백을 메우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에 도로공사는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180cm의 신장을 가진 태국 국가대표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타나차 쑥솟을 지명했다. 물론 도로공사는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도 아포짓 스파이커 반야 부키리치를 지명한 만큼 타나차는 아웃사이드히터로 나설 확률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타나차는 14일 흥국생명과의 개막전에서 아웃사이드히터로 출전해 문정원,임명옥 리베로(이상 22개) 다음으로 많은 16개의 서브리시브를 책임졌다. 하지만 타나차의 개막전 리시브 효율은 단 18.75%에 불과했다. 서브리시브가 흔들리면서 공격에서도 위축된 타나차는 부키리치(36회)에 이어 도로공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27번의 공격을 시도했지만 성공률은 단 22.22%(6/27)에 머물렀다.
물론 도로공사 입장에서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정아가 있을 때처럼 타나차에게 서브리시브를 면제시켜 주고 임명옥 리베로와 문정원에게 '2인 리시브'를 맡기는 것이다. 물론 임명옥과 문정원의 수비부담이 커지겠지만 박정아가 있던 시절 오랜 기간 써왔던 전술이고 리시브 부담을 벗은 타나차의 공격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개막전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얻은 김종민 감독이 타나차 활용에 대해 어떤 해법을 들고 나올지 주목된다.
황민경-고유림 잇는 현대건설의 살림꾼
▲ 위파위는 V리그 데뷔전에서 31개의 리시브를 책임지며 김주향과 김연견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줬다. |
ⓒ 한국배구연맹 |
지난 시즌을 3위로 마친 현대건설은 시즌이 끝나고 왼쪽의 핵심 선수 두 명을 잃었다. 현대건설에서 6시즌 동안 활약했던 '밍키' 황민경(IBK기업은행 알토스)이 FA자격을 얻어 기업은행으로 이적했고 무릎부상을 달고 시즌을 치렀던 고예림은 양 무릎에 수술을 받으며 이번 시즌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이에 현대건설은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태국 출신의 아웃사이드히터 위파위 시통을 지명했다.
지난 시즌까지 태국의 슈프림 촌부리에서 활약한 위파위는 174cm로 신장은 썩 크지 않지만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기본기를 갖춘 선수로 현재 태국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VNL대회에서 태국 대표팀으로 출전해 12경기에서 50득점을 올린 위파위는 8월 파리올림픽 세계예선에서도 한국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강성형 감독 역시 주력선수들의 이적과 부상이 겹친 이번 시즌 위파위를 주전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위파위는 15일 페퍼저축은행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김주향과 짝을 이뤄 주전 아웃사이드히터로 출전했다. 이날 19번의 공격을 시도한 위파위는 26.32%의 성공률로 5득점을 올리며 다소 아쉬운 공격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위파위는 이날 31번의 리시브를 책임지며 현대건설의 리시브를 전담했다. 비록 리시브 효율은 19.35%로 높지 않았지만 아시아쿼터 선수가 시즌 첫 경기부터 팀의 서브리시브를 전담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활약이었다.
현재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주향은 물론이고 한창 재활 중인 정지윤 역시 수비와 서브 리시브보다는 공격에 특화된 선수다. 황민경과 고예림의 이탈로 수비가 약해졌다고 평가 받는 현대건설에서 위파위가 리시브를 전담해 준다면 김다인 세터를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은 경기를 풀어 가기가 한결 수월해 질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의 새로운 살림꾼이 될 가능성을 보인 위파위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 데뷔전에서 11득점을 올린 필립스(왼쪽에서 두 번째)는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주전 미들블로커로 활약할 확률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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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에 창단해 이제 두 시즌을 치른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4월과 5월에 걸쳐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로공사의 노련한 '운영의 묘'에 걸려 들었다. FA 박정아의 보상선수로 주전세터 이고은을 내준 페퍼저축은행은 이고은을 재영입하는 과정에서 팀의 주전 미들블로커 최가은과 2023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도로공사에 내주고 말았다(그리고 도로공사가 얻은 1라운드 지명권은 이번 시즌 신인 최대어 김세빈으로 돌아왔다).
최가은과 신인지명권을 내주며 미들블로커 라인이 크게 약해진 페퍼저축은행은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필리핀 국적의 미들블로커 엠제이 필립스를 지명했다. 미국과 필리핀의 혼혈 선수인 필립스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 필리핀리그에서 활약했고 해외리그 진출은 V리그와 페퍼저축은행이 처음이다. 전문 미들블로커로서 중앙에서의 플레이가 익숙한 선수지만 미들블로커로서 신장(182cm)이 크지 않다는 아쉬움도 분명한 선수였다.
페퍼저축은행의 조 트린지 감독은 15일 현대건설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미들블로커 자리에 필립스와 195cm의 신장을 가진 귀화선수 염어르헝을 선발 출전시켰다. 아직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염어르헝은 단 한 번의 공격시도 후 서채원과 교체됐지만 필립스는 경기 내내 단 한 번의 교체 없이 풀타임을 소화했다. 44.44%의 공격 성공률을 기록한 필립스는 3개의 블로킹을 곁들이며 팀 내에서 야스민 베다르트(17득점) 다음으로 많은 11득점을 올렸다.
페퍼저축은행은 현대건설을 상대로 한 세트를 따냈지만 패한 나머지 세 세트에서는 20점도 채 올리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했다. 외국인 선수 야스민을 비롯해 박정아,이한비 등 팀의 핵심 선수들도 대부분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이 시즌 첫 경기를 통해 아시아쿼터 필립스의 기량을 확인한 것은 분명 큰 수확이었다.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불안했던 미들블로커 한 자리는 필립스의 차지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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