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정원 늘려도 기피과·지방 안가고 의료비만 오른다"
의사 단체, 모든 수단 총력 대응 할 것
정부가 19년 만에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늘린다. 정부는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25년부터 1000명 이상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사 단체들은 정부가 협의 없이 의대 정원을 조정하면 파업을 비롯해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17일 당정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2006년부터 연 3058명인 전국 40개 의대 신입생 정원을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시험을 보는 2025학년도 입시에서 1000명 이상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당초 보건복지부가 검토한 증원 규모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의대 정원 증원은 오랜 과제다. 2000년 ‘의약 분업’에 반발한 의사 단체의 요구로 2006년까지 의대 정원은 10% 줄었다. 이후 18년간 국내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의료 대란이 발생한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의대 정원을 연 400명 늘려 10년간 유지하겠다는 방안을 계획했지만,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로 한발 물러섰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올해 초 정부와 의사단체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다시 협의에 돌입한 상황이다.
의사 수 부족 vs 충분
정부는 소아청소년·산부인과 같은 필수 의료 붕괴와 지방 의료 및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의대 정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0년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6명)의 56% 수준이다. 내년부터 1000명씩 파격적으로 늘려도 2035년이 되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88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OECD 주요국 평균(4.5명)의 64%에 불과하다. 정부 관계자는 "의료 수요가 많아지게 되는 인구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그땐 필수 의료 악화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역대 정부에서 건드리지 못한 의대 정원 증원을 하려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의사 단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지금의 의대 정원을 유지하더라도 의사 배출과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 수치를 빠르게 따라잡는다"면서 "당장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평균보다 적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1000명당 활동 의사 수의 증가는 OECD 국가 평균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40년엔 우리나라 3.85명, OECD 국가 평균은 4.83명으로 격차가 0.98명으로 1명 이하로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은 2055년에 우리나라 5.34명, OECD 국가 평균 5.83명으로 그 격차는 0.49명으로 0.5명 이하로 감소한 데 이어 2063년에는 우리나라(6.49명)가 OECD 국가 평균(6.43명)을 넘어선다고 분석했다. 남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1인당 의료서비스 이용은 OECD 주요국의 약 3배 수준"이라며 "의대 정원을 확대할 때는 의사 인력 과잉 공급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비용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기피 과 해소 안 돼 vs 강력한 유인책
의사 단체들은 의사 수가 증가하면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의사 수 증가로 인한 의료비의 증가는 국민의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2020년 사이 우리나라 의사 1인당 의과 요양 급여비용은 2005년 2억3778만3000원, 2010년 3억5190만5000원, 2015년 4억2297만1000원, 2020년 5억6588만6000원이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의대 정원을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향후 요양 급여비용 추계에 적용해보면 2025년 총 요양 급여비용 123조 3757억원에 의과 요양 급여비용 86조 1636억원, 2040년 총 요양 급여비용 333조 6472억원에 의과 요양 급여비용 232조 4186억원이다. 의대 정원 350명 증원을 가정하면, 2040년에 요양 급여비용 총액은 현상을 유지할 경우보다 약 6조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정원 1000명을 증원하는 경우 2040년 요양 급여비용 총액은 약 17조원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의협 관계자는 "의사를 충분히 양산하면 남는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은 안이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의사 증원과 함께 필수 의료로 의사를 끌어들일 당근책도 내놓을 계획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지역 간 의료 불균형에는 의료 수가, 인프라, 정주 여건 등이 문제"라며 "의료 수가부터 손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등 필수 의료 분야 수가(건강보험 재정에서 병의원에 지급하는 의료행위 대가)를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의료인이 제공한 의료서비스만큼 진료비를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가 시행되는 까닭에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수도권에 의료인이 몰리는 실정이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정원 규모’, ‘총액 인건비’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방향도 제시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방 의대 중심으로 정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역시가 아닌 지방의료원이 3~4억원 수준의 연봉을 조건으로 전문의 채용에 나서더라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청주 A 종합병원에선 연봉 10억원이라는 파격 조건의 두 차례 전문의 채용 공고에도 지원자는 ‘0명’이었다.
파업 불사 vs 여론은 증원 찬성
의사 단체들은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이 발표되면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오후 전국 의사대표자회의를 열고 최근 불거진 의대 정원 확대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다. 여론은 싸늘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대국민 의료현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과반은 의대 정원을 300~1000명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000명 이상 증원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24.0%에 달했다.
앞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여론조사에서 국민 절반 이상은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10명 중 7명이 정원 확대를 찬성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지난 3월 21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건의료인력 현황과 확충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8.4%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지역별로 의사부족 응답이 가장 지역은 전남으로 81.3%였다. 이어 ▲울산 69.7% ▲전북 69.4% ▲충남 68.7% ▲대전 65.7% 순이었다. 의사가 부족해 겪는 가장 큰 불편사항(복수응답)으로는 진료 대기시간(69.7%), 진료 예약 어려움(57.9%), 짧은 진료시간으로 충분한 상담을 받지 못한 것(50.0%), 진료·검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한 것(37.1%) 등이 있었다.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6.7%였다. ‘모르겠다’는 23.5%였고, 반대한다는 응답은 9.8%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조사로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하고 적정의료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며 "정부는 더 늦추지 말고 불법의료 근절과 의대 정원 확대, 적정의료인력 기준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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