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섬을 다리로 연결해 만든 도시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베네치아로 향하는 길은 독특했습니다. 베네치아의 구도심이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본토와 상당히 떨어져 있더군요.
이탈리아 본토에 있는 베네치아 신도심과 섬으로 구성된 베네치아 구도심을 연결하는 다리는 3.8km를 넘는 길이입니다. 기차를 타고 탁 트인 바다를 지나니, 그제야 멀리 베네치아 구도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 베네치아로 가는 다리 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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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 안에서는 작은 배인 '곤돌라'를 타거나 수상 버스나 수상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다만 구도심 전체가 아주 넓지는 않아서 저는 걸어 다니는 것을 택했습니다.
▲ 베네치아의 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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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금의 베네치아가 탄생한 것은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였습니다. 서로마 제국은 북쪽에서 내려온 고트 족의 침입으로 멸망했습니다. 이때 고트 족의 약탈을 피해 인근의 사람들이 베네치아의 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베네치아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피란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고 이들이 돌아올 고향은 남아 있지 않았죠. 피란민들은 이제 베네치아 섬에 터전을 잡고 살아야 했습니다.
▲ 바다에 박힌 말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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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베네치아 섬은 이탈리아 반도와는 조금씩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베네치아는 한동안 명목상으로 동로마 제국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한 자치를 누렸죠. 귀족들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만들어졌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갔습니다. 명목상의 종주국인 동로마 제국과 이탈리아 반도를 연결하는 중개 무역상이 되었죠. 시간이 지나며 베네치아는 지중해 무역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십자군 전쟁 시절에는 군대와 물자를 이송하며 큰 부를 얻기도 했죠.
▲ 베네치아 성 마르코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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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 각국은 새로운 항로를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죠. 이제 무역의 중심은 지중해가 아니라 대서양이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1797년 나폴레옹에 항복하며 완전히 멸망합니다. 한동안 베니스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소유를 오갔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에는 다시 전란의 시대가 도래했죠.
북부의 사르데냐 왕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탈리아 통일 전쟁은, 1860년 남부 양시칠리아 왕국을 멸망시키는 데 이릅니다. 이듬해 이탈리아 왕국이 건국되었죠. 이제 남은 것은 반도 중앙의 교황령과 동북쪽의 섬 베네치아였습니다. 애초에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전란을 피해 만들어진 도시였습니다. 정복이 쉬웠을 리 없었죠.
▲ 곤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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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오랜 기간 이탈리아 반도에서 벗어난 역사를 살았습니다. 이탈리아가 통일될 때에도 교황령을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땅이죠. 그러니 이곳을 '마지막 이탈리아'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베네치아의 시민들은 원래 혼란을 피해 섬에 정착한 옛 로마의 시민들이었습니다. 전란과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린 이탈리아 반도보다 베네치아의 시민들이 로마의 유산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탈리아의 정체성은 이 섬 안에 더 많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죠.
여러 섬을 연결한 베네치아의 구도심은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섬과 섬 사이, 좁은 물길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힘이 있었습니다.
베네치아는 서로 다른 섬을 다리로 연결해 만들어낸 도시였습니다. 어쩌면 오랜 기간 여러 지방으로 나뉘어 있었던 반도를 통일해 만든 이탈리아라는 국가도 이 베네치아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베네치아라는 도시는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에 병합된 '마지막 이탈리아'이면서, 동시에 마지막까지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지킨 '마지막 이탈리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의 다리' 건너, 여전히 평화로운 물길을 가르며 그렇게 '마지막 이탈리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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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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