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우크라에 이·팔 전쟁까지…바이든 외교정책 '막다른 길'
이스라엘과 주변국 관계 개선에 중점
오바마 행정부 대외정책 기조 그대로 계승
'중동 데탕트' 구상, 하마스에 산산조각
"對이란 유화책 재검토" 비판도
美 군사 자원 분산에, 中 대만 침공 가능성도
이란 참전시 오일쇼크…바이든 재선 험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시작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처했다. 이번 전쟁으로 미국이 나서야 할 전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두 개로 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對)이란 유화책을 펼쳐왔으나 이스라엘을 침공한 하마스의 뒤에 이란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뒤통수까지 맞은 상황이다. 하마스의 침공에 전세계적인 비난이 쏟아지면서 '중동 개입 최소화'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책 전반도 막다른 길에 놓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 의회에서는 공화당이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산유국인 이란까지 이스라엘전에 참여하게 되면 전쟁의 불씨는 중동 전역으로 확산된다. 이 여파는 국제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급등, 경기침체 돌입 등 최악의 경제 시나리오로 번진다. 일각에서는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가르는 최대 변수가 외교책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대신 외교' 바이든 중동정책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전쟁 대신 외교, 미국의 중동 관문인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관계 개선을 통한 미국의 직접 개입 축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2011년), 이란과의 핵 합의 도출(2015년)로 요약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를 그대로 계승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결정했다. 중동 내 최대 반미 국가인 이란과는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파기한 핵 협정 복원을 논의해왔다. 최근에는 이란과 포로를 맞교환하고,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원유수출대금 60억달러(약 8조1200억원)도 해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등 강경책 일변도였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당근책을 썼다는 점에서 차이가 컸다.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관계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미국은 이번 사태 직전까지도 이란의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화해를 중재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빠져나간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국을 제어하고,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구상이다. 대신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중동보다 아시아태평양에 집중하는 것이 복안이다.
수렁에 빠진 바이든 대외정책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데탕트(긴장 완화)' 구상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산산조각났다. 특히 하마스를 오랜 기간 지원해 온 이란이 이번 공격의 배후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표방한 대이란 유화책에 대한 비판은 안팎으로 쏟아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인사들은 이란에 대한 오판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이어졌고, 최근 미국이 동결 해제한 이란 원유수출대금도 테러단체 지원에 쓰일 수 있다고 바이든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이 배후에 있다는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동결 해제했던 이란의 원유수출대금을 한 달여 만에 결국 재동결했다. 미국이 공을 쏟았던 사우디·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도 요원해졌다.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애론 데이비드 밀러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사우디 협정을 성사시킬 능력은 현재 '제로(0)'로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조성하려던 양국 간 화해 분위기에 반발해 하마스가 공격을 감행했을 수 있다는 뉴욕타임스(NYT) 등의 분석이 나오면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욱 가열됐다.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이 추진한 이스라엘·사우디의 평화협정 중재 노력은 보류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은 더 요원해졌다"며 "이란과 적대 관계를 완화하려는 희망도 실현되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압박과 긴장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중동을 통합하겠다는 희망은 이제 뒤집어질 위험에 놓여 있다"며 "중동에서 눈을 돌려 러시아,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려는 희망도 멀어졌다"고 덧붙였다.
대만해협까지 '제3 전선' 형성 가능성도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전선이 두 개로 늘어났다는 점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큰 부담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1년 반 넘게 지원하고 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각국의 피로도가 커지는 상황이다. 미 의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여론이 번지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 전쟁까지 터지면서 미국의 대우크라이나 지원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연간 38억달러(약 5조1500억원)에 이르는 군사 원조를 보내는 미국의 동맹국인 반면, 우크라이나는 북미와 유럽 등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 교착 상태로 접어든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 지원까지 줄어들면 사면초가에 몰린 러시아의 숨통을 틔우고, 대만 침공을 노리는 중국이 이를 틈타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제3 전선'으로의 확장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주 프랑스 타이베이 대표처의 우즈증 대표는 지난 8일 프랑스 르피가로TV에 출연해 중국이 러시아와 하마스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가까운 장래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어느 정도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이 두 개의 전쟁에 발을 담근 상황에서 대만해협 충돌까지 발생한다면 미국의 군사 자원 투입 역량이 분산되고, 이는 중국의 도발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방의 대규모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지난 6월 대반격에 돌입했음에도 전세를 뒤집지 못하면서 중국이 대만을 향한 군사 압박 수위를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데이비드 안델만 미국 CNN 칼럼니스트는 "불길하게도 중국이 대만을 통제하려 하는 잠재적인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며 "(미국의) 국가 자원은 무한하지 않고, 정치권의 견해도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 세 개의 전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과 관련해 (의회의) 공통된 의견을 도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확전' 경제적 여파…바이든 재선 가늠자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전이 '5차 중동 전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는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허용하지만 영토 편입 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란에 대해서는 "국경을 넘지 말고 전쟁을 고조시켜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8일에는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또 중동에 항공모함전단과 전투기를 추가로 배치하는 등 미군 화력 보강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하마스는 물론 참전 가능성이 우려되는 레바논, 이란 등에 미국의 강력한 전쟁 억지 의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산유국인 이란 참전 시나리오가 현실화 하면 미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국제유가가 치솟고 겨우 진정된 인플레이션이 반등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란 참전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까지는 큰 경기 충격 없이 물가를 잡고 있지만, 만약 인플레이션이 재차 오르고 성장률이 떨어지면 내년 재선 가도에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정책 자체보다는 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이 재선 성공 여부를 가를 것으로 내다봤다.
공화당 내 여론조사 전문가인 글렌 볼저는 "바이든의 외교정책은 대외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하며 "이제 바이든은 차라리 국내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 정치적으로 현명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혼돈에 빠져 있어도 경제가 괜찮다면 재선에 성공하겠지만, 다른 세계에 평화가 찾아와도 미국 경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전망이 암울하다면 바이든은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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