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늦어지는 연두색 법인차 번호판…"대상 축소 논의 중"
9월께 시행하겠다던 법인차 전용 번호판 도입이 계속 미뤄지는 까닭이 적용 대상을 축소하려는 논의 때문으로 확인됐다. 경차와 소형차 등은 제외해야 한다는 렌터카 업계의 요구가 거센 탓이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17일 “법인차 전용 번호판 부착 대상을 줄이기 위한 내부 조율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정리가 되는 대로 시행 일정과 세부 적용 대상 등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렌터카 업계에서 부착 대상을 줄여달라는 요구가 많다”며 “상대적으로 배기량이 적은 중저가 차량까지 법인차 번호판을 달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들”이라고 전했다.
법인차 번호판 도입이 슈퍼카 등 비싼 차량을 법인 명의로 산 뒤 사주 일가나 고위 임원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걸 막겠다는 게 주요한 취지인 만큼 경차와 소형차 등은 제외해달라는 주장이다. 또 경비보안회사 차량처럼 외관상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예외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새로 구매하거나 리스하는 차량은 모두 연두색으로 된 별도의 전용 번호판을 달아야만 한다. 국토부는 처음엔 자가용(리스차 포함)만 대상으로 할 방침이었으나 이 경우 고가의 수입렌터카로 옮겨가는 ‘풍선효과’ 우려 때문에 렌터카도 포함키로 했다.
관용차 역시 부착 대상이며, 수사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할 방침이다. 정부가 색깔이 다른 전용 번호판을 도입하려는 건 일종의 ‘명찰효과’ 때문에 법인차를 함부로 개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울 거란 판단에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한국갤럽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가 “전용 번호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국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기준으로 취득가액이 3억원을 넘는 슈퍼카와 럭셔리 승용차 6000여대 중 75%가량이 법인 명의였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페라리, 람보르기니,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등이 해당한다.
법인차는 구입비와 보험료, 유류비 등을 모두 법인이 부담하는 데다 연간 최대 1500만원까지 경비처리(세금 감면)도 가능하다. 이러한 법인차를 사적으로 사용하면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 혐의 등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막을 규제는 허술한 탓에 전용 번호판이 대책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시행이 자꾸 늦춰지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애초 국토부는 상반기 준비를 거쳐 이르면 7월께 전용 번호판 도입을 언급했다가 다시 9월로 미룬 바 있다. 이런 사이 자동차 시장에서는 전용 번호판 도입 전에 법인차로 고가 수입차나 국산 대형차를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부 사항이 결정된 뒤 국토부가 전용 번호판 도입 관련 행정 예고를 하면 이어 법제처 법령 심사와 국무조정실의 규제 심사를 거쳐야 하므로 자칫 올해를 넘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차와 소형차 등을 제외하려는 걸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인차를 본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면 번호판 색깔이 달라진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며 “정책에서 예외를 확대하면 오히려 형평성 논란만 더 불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법인차에 별도의 교체 시한을 두지 않는 점도 논란이다. 국토부는 현재 등록돼 운행 중인 차량도 대부분 2~3년이면 새 차로 바꾸기 때문에 그때 교체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교통전문가는 “신규 법인차만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는 데다 정책 효과를 키우기 위해선 기존 법인차의 교체 기한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용 번호판 제도는 단순히 슈퍼카 사용만 막으려는 게 아니라 법인차 자체의 남용을 억제하려는 취지가 있다”며 “경차, 소형차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차량은 면제해준다면 이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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