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싸울 때" 최악 분열 부른 그들, 네타냐후에 힘 보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정에 반대하며 파업과 시위를 참여해온 군인들도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 동원령에 응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네타냐후 정권로부터 '반역자' '무정부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던 이들이지만, 조국이 위기를 처하자 기꺼이 전선으로 향했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뉴욕타임스(NYT) 등은 그간 네타냐후 정권과 반목했던 이스라엘 현역·예비역 군인들도 정쟁을 제쳐두고 입대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 개혁법’ 추진에 불만을 품고 반(反)정부, 반 네타냐후 시위에 참여해왔다.
대표적인 이들이 반(反) 네타냐후 성향의 전우회인 브러더스앤시스터스인암스(Brothers and Sisters in Arms)다. 이들은 지난 1년간 이스라엘 극우 연정의 정책에 반대하며 길거리 시위 등을 주도한 단체다.
하지만 지난 10일 이스라엘 국방부가 예비군 36만 명을 48시간 이내 소집하는 총동원령을 내리자, 이 전우회 소속 군인들도 신속하게 동원령에 응했다.
전우회 회원인 예렌 나본(53)은 퇴역 전투병으로, 지난달 텔아비브 외곽의 자택 인근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전력까지 있다. 그는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 곧바로 군대에 복귀했고 이후 가자지구의 민간인 대피 작전에 투입됐다. 나본은 소집된 예비군들이 기지로 이동할 버스와 기차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전우회 동료들과 이들을 기지로 실어나를 차편을 마련하는 데도 앞장섰다.
일부 이스라엘 국민들은 구조에 나선 군인들을 향해 “이번 사태는 다 당신들 탓”이라고 폭언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고 WP는 전했다. 이럴 때면 군인들은 주민에게 “우리는 이곳에 반정부 시위대가 아닌 이스라엘 군인으로 달려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마스 위기 앞에 '건국 이래 최악 분열' 일단락
앞서 지난 7월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극우 연정은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이른바 ‘사법 장악안’을 크세네트(의회)에서 최종 의결했자 이스라엘 전역은 큰 혼란 속에 빠뜨렸다. 야당과 시민단체, 전·현직 국가 지도자를 포함해 군인들까지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악의 분열로 치달았다.
특히 예비군 수천 명이 복무 중단을 선언하며 안보 공백이 현실화됐다. 인구 912만 명인 이스라엘은 예비군 36만 명, 상비군 17만 명 규모로 예비군 의존도가 매우 높다. 복무 거부를 선언한 예비군 중에는 공군 조종사, 특수 부대 소속 대원 등이 포함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법 개혁안 강행이 군 사기를 저하하고 군 내부 갈등을 촉발했다고 분석했다.
예비군들도 네타냐후 연정에 대한 반감이 사라진 건 아니라고 전했다. 나본을 포함한 군인들은 “그들(네타냐후 정권)이 내린 정책은 미친 짓이었고, 결국 이번 비극을 초래했다”면서도 “이제 우리는 정쟁과 무관하며, 미래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원령에 응해 군으로 복귀한 브러더스앤시스터스인암스 회원인 엘다르 밀러는 “하마스 기습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대응은 그간 심각한 정보 실패만큼이나 내부 분열이 심화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전쟁이 끝나면 우리를 반역자라고 불렀던 이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겠지만, 지금은 전쟁에서 이기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외신은 하마스의 기습 이후 한동안 정치적 입지가 위축됐던 네타냐후 총리가 전시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019년 이래 부패 재판이 이어지고 있고, 사법 개혁으로 반대 세력의 강력한 시위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일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을 선포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고, 반 네타냐후 진영을 포함한 이스라엘 정치권은 전시 정쟁 중단을 선언하고 총리를 중심으로 신속한 대처에 나섰다.
네타냐후 정권과 반목해온 예비군 역시, 동원령에 빠르게 응소하면서 그간의 분열과 반목을 멈추고 공동의 적인 하마스 앞에서 힘을 보탰다. NYT는 대다수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지금은 싸울 때이며,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문책은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다만 이는 전시 초기의 상황으로, 향후 이스라엘이 더 큰 혼란에 봉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평론가 나훔 바르네아는 히브리어 신문 예디오트 아르노트의 칼럼을 통해 “이번 사태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국가”라며 정부에 대한 심각한 신뢰 상실에 대해 지적했다. 이스라엘 군·정보 당국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까맣게 모르다 민간인을 포함한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상당한 비난에 직면할 것이란 얘기다.
이스라엘의 유명 작가 도릿 라비니안은 “우리가 그간 운명을 어떤 자들의 손에 맡겼는지에 대한 끔찍하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게 됐다”면서 “국민들이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냈던 건 안보만은 제대로 책임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를 망각했다”고 NYT에 전했다.
"국내 정치 분열과 갈등, 북한에 기회…합의점 찾아야"
이에 대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스라엘이 단기적으로는 정쟁을 그치고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와 안보에서 완전히 실패한 네타냐후 정권을 그대로 둘 순 없을 것”이라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갈등과 균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안 교수는 “이스라엘 내부의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안보 긴장감을 낮췄고 결국 하마스 기습을 자초했단 사실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현재 한국의 정부·여당과 야당 간 외교·안보 노선상 일치점이 하나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같은 극단적 분열은 북한에게 의외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보와 국방 강화 전략을 정쟁 도구로 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고, 여야의 자성과 정치적 합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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