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여지원 “‘노르마’로 한국 관객 만나 기뻐요”
‘무티의 소프라노’로 유명세… 한국서 전막 오페라 출연은 2014년 이후 두 번째
‘리카르도 무티가 선택한 소프라노’로 유명한 여지원(43)이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오페라 ‘노르마’(26~29일 오페라극장)의 타이틀롤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유럽에서 ‘비토리아 여(Vittoria Yeo)’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여지원이 국내에서 전막 오페라에 출연하는 것은 2014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투란도트’의 류 이후 9년 만이다. 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노르마’ 기자간담회에서 여지원은 “2005년 한국을 떠나 지금까지 유럽에서 활동하느라 한국 무대는 거의 서지 못했다. 특히 서울에서 오페라 출연은 처음인데, ‘노르마’같은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르마’는 벨칸토 오페라(화려한 기교의 창법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빈첸초 벨리니의 대표작으로 1831년 초연됐다. 고대 로마의 지배를 받는 갈리아 지방의 드루이드교 여사제 노르마의 사랑과 질투, 복수, 용서, 희생 등에 관한 이야기다. 노르마는 순결 서약을 깨뜨리고 로마 총독 폴리오네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몰래 낳아 키우고 있다. 하지만 폴리오네는 또 다른 사제 아달지사와 사귀며 노르마를 배신한다. 결국 노르마는 제사장인 아버지를 비롯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죽음을 맞는다. ‘노르마’는 19세기 말 베리스모 오페라가 득세하면서 한동안 잊혔으나 20세기 중반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덕분에 부활했다. 한국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이 1988과 2009년 무대에 올린 것이 전부다.
이번 프로덕션으로 노르마 역을 세 번째 연기하는 여지원은 “‘노르마’는 성악가에겐 기교적으로 어려운 작품이지만 관객에겐 이해하기 쉽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사랑, 우정, 희생과 같은 감정과 함께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삼각관계가 나오는 등 지루할 틈이 없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노르마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사제로서 엄격한 면모를 보이는 이면엔 로마 총독과 금지된 사랑을 나눈 여인,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에 대한 애증 등이 표출된다. 그런 노르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리아가 작품을 대표하는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다. 여지원은 “노르마는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 하지만 로마 총독을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배신당하는 등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데, 이런 감정을 억제하며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결한 여신이여’는 노르마가 그런 감정을 억누르며 부르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예술의전당이 선보이는 ‘노르마’는 2016년 알렉스 오예가 연출한 영국 로열오페라 프로덕션이다. 연출가 오예는 작품의 배경을 현대로 옮긴 뒤 개인의 욕망과 종교의 근본주의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지원은 “오페라는 1600년대에 처음 등장한 뒤 180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이 현재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다. 현대 관객에게도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유럽에서는 배경을 바꾸는 등 레지테아터 연출이 많이 이뤄진다”면서 “이번 작품 역시 연출가 오예가 현대인도 공감할 수 있게 흥미롭게 해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교 2학년 때 뒤늦게 성악을 시작한 여지원은 서경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2005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파르마 아리고 보이토 음악원, 시에나 카자나 음악원을 거쳐 모데나 베키토넬리 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그는 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부인이자 라벤나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크리스티나 무티의 눈에 띄며 도약하기 시작했다. 지휘자 무티가 2013년 라벤나 페스티벌의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 역에 출연한 여지원을 눈여겨봤다가 201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자신이 지휘하는 오페라 ‘에르나니’ 엘비라 역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당시 무명의 동양 소프라노가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화제를 모았지만, 막상 공연 이후엔 여지원의 기량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이후 여지원은 ‘무티의 프리마돈나’라고 불리며 행보를 넓혔다. 2017년에는 세계 최정상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와 함께 ‘아이다’의 타이틀롤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초대됐고, 2018년에는 미국 시카고 심포니와 ‘레퀴엠’을 공연했다. 2019년에는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노래하는 등 다양한 오페라와 콘서트 무대에 초청받고 있다.
여지원은 “오페라는 언어를 기본으로 하는 장르다. 그동안 내가 사용하는 언어(이탈리아)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 중심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드라마틱한 역을 주로 맡아 왔다”며 “아직도 연기하지 못한 이탈리아 오페라가 많은 만큼 앞으로도 이탈리아 오페라의 맛을 잘 살리는 게 제 목표”라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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