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작은 선거가 준 큰 교훈
대한 미니 찬반투표 성격
지지층만 바라보고 중도층
외면하면 패배하는 것 경험
중간평가인 총선 6개월
앞두고 약 되도록 변화해야
일개 구청장 선거가 이렇게 큰 관심과 파장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여권 내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놓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선거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미니 찬반투표 성격으로 치러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얻은 득표율 39.37%와 56.52%는 여론조사가 아닌 실제 투표를 통해 나타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 후보인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하면서 실시됐다. 국민의힘 당규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귀책 사유로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당초 당 지도부는 여론조사에서 절대 열세인데다 당규에 이런 내용도 있는 점을 의식해 무공천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대법 유죄 판결로 선거 출마 자격이 없는 김 전 구청장을 판결 3개월 만에 특별사면 및 복권을 해주면서 공천쪽으로 기류가 급변했다. 다른 사람을 공천해도 당규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올 상황에서 보선 발생의 책임이 있는 김 전 구청장을 결국 후보로 내세우게 됐다. 이 대목에서 일개 구청장 선거가 윤 대통령에 대한 찬반투표 성격으로 변한 것이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김 전 구청장은 문재인정부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시절 조국 전 민정수석의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뇌물수수 감찰 무마 의혹 등을 폭로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총장 시절 조국 수사를 지휘했던 윤 대통령은 김 전 구청장을 공익제보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익제보가 아니라 공무상 비밀누설이라는 대법 판결과 다른 것이다. 윤 대통령이 평소 강조하는 법과 원칙,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법을 어긴 것은 전혀 아니지만 개인적 판단이나 진영 논리에 따라 대법 판결도 부정하고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공천을 하는 모습이 이번에 목격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고 이번 선거를 당에 맡겼다면 이렇게 파장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무공천을 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굳이 공천을 해야 했다면 김 전 구청장이 아니라 다른 후보를 내세웠어야 했다. 그렇다면 17% 포인트라는 큰 차이로 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론조사에서 이미 큰 차이가 났다고 하는데, 민주당 후보가 후보 등록만 해놓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아도 승패가 바뀌지 않을 큰 격차였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얘기다.
만일 윤 대통령이 장관 후보도 마음대로 지명하는데, 구청장 후보 한 명 어떻게 못하겠느냐는 생각으로 그랬다면 판단 착오다. 좋아하는 사람을 임명하는 인사 스타일의 연장으로 이번 선거를 대했다면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은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집토끼부터 잡아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누구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 지지층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하고 있거나 선거를 치를 생각이라면 걱정이다. 이번 투표 결과가 말해 주듯 지지층한테만 기대어 선거를 치르면 패배한다.
중도층은 심판하고 싶은 대상이 있을 때 다른 경쟁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성향이 있음이 이번에 거듭 확인됐다. 민주당 후보가 받은 득표율 56.52%는 민주당이 평소 각종 여론조사에서 받았던 30%대 지지율을 훨씬 상회한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이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민주당에 그냥 표를 줘버리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가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이 대표 사법리스크보다 크게 작용한 셈이다.
한마디로 강서구청장 선거는 윤 대통령에 대한 경고와 예비 심판이었다. 윤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교훈 삼아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꾼다면 6개월 뒤 열리는 내년 총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고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음은 정권 심판이 아니라 거대 야당 심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기존 국정 운영 방식을 고수할 경우 내년 총선은 이번의 경고 수준을 넘어 설 것이고, 그다음은 레임덕이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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