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커뮤니티병원 만들어 ‘재활 난민’ 막는 시금석 될것”

민태원 2023. 10. 1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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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기 치료후 재활치료 전담 취약계층 위한 공공의료 필요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
45개 상급병원 중 공공역할 전무
보라매병원, 작지만 인프라 충분
사회적 공감대·심층적 검토 필요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커뮤니티병원의 기초와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의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뇌경색·뇌출혈이나 심장질환, 암, 척추질환의 수술 등 급성기 치료 후에는 회복기 재활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국내 여건에서 노인을 비롯한 의료 취약계층이 이런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곳은 마땅치 않다. 급성기 치료를 주로 맡는 대형 병원에선 재원 일수 관리 방침 때문에 1주일 이상 머무르기가 쉽지 않다. 퇴원 후 흔히 문을 두드리는 요양병원은 특성상 환자 상태의 개선 보다는 유지하는 역할에 치중한다. 결국 가정과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회복·재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기 십상이다.

이처럼 급성기 치료 기관과 요양병원 사이 의료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커뮤니티병원’에 대한 논의가 몇 년 전부터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 중심에 ‘공공의료의 3차병원’ ‘공공 상급종합병원’을 표방한 서울시보라매병원이 있다. 취약계층의 중증질환 치료에 중점을 둬 온 서울시 산하 공공의료기관으로,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 중이다.

이재협(서울의대 교수)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은 “커뮤니티병원 운영으로 회복기 재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장애가 발생하거나 ‘재활 난민’ 등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마련에 시금석이 되고자 한다”고 단언했다. 또 “커뮤니티병원의 기조와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도록 ‘테스트베드(시험공간)’의 역할로, 서울시뿐 아니라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근 취임 6개월을 맞은 이 병원장을 만나 커뮤니티병원의 개념과 필요성, 추진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공공의료의 3차병원은 뭔가.


“현재 45개 상급종합병원 중에는 공공의료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없다. 몇몇 국립대병원이 큰 테두리에선 공공의료기관이라 할 수 있지만, 교육 기능 등 역할 면에서 결이 다르다. 의료 취약층의 실질적인 건강보호에 앞장서 온 서울시보라매병원이나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이 공공의료에 해당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실제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보라매병원의 경우 규모는 작지만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진료 역량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취약계층 중증 환자들에게 최상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공공의료의 3차병원, 공공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이 가능하다.”

-현 의료전달체계에서 가능한가.

“병·의원(1차 진료)-종합병원(2차)-상급종합병원(3차)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의료전달체계와는 다르게 공공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한 새로운 트랙을 신설하고 의료급여법 개정을 통해 별도의 수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의료전달체계 도입을 위해선 이런 의료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법제도 마련에 대한 심층적 검토도 따라야 한다.”

-커뮤니티병원 개념이 생소하다.

“커뮤니티병원은 급성기 치료 이후 일상생활로의 복귀까지 분절된 회복기 재활 기능을 담당하는 병원이다. 급성기 진료 기능 일부와 재활 치료 기능이 강화돼 급성기와 요양병원을 연계해 주는 가교적 의료 시스템으로 보면 된다.”

-서울에 왜 커뮤니티병원이 필요한가.


“서울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고령화 비율은 2020년 15.4%(148만명)에서 2040년 32.4%(282만명)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울 노인 중 의료급여 수급권자 비율은 35.8%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고 6대 광역시 평균(32.1%)을 상회한다. 진료비가 부담되는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얘기다.

반면 서울의 노인 인구 대비 요양병원 병상 수는 6대 광역시 평균의 30% 수준으로 급성기 치료 후 가정 복귀를 지원할 자원 여건이 취약한 실정이다. 또 의료급여권자 수 대비 공공 병상 수는 전국 평균의 77% 수준이며 65세 이상 의료급여권자 기준으로는 33%에 불과해 고령의 의료취약층을 위한 공공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다. 급성기 치료 이후 의료 공백이 많이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지적·자폐 장애인들의 적시성 있는 재활 치료를 담당하는 병상이 거의 없다. 급성기 의료기관에서 재활 치료를 위해 입·퇴원을 반복하며 병원을 떠도는 ‘재활 난민’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급성기 치료 병원과 요양병원 사이에 커뮤니티병원이 있으면 퇴원 환자의 온전한 사회 복귀를 돕고 재활 치료를 받지 못해 장애가 남게 될 경우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부담도 덜 수 있다.”

-해외에도 있는 모델인가.

“커뮤니티병원은 싱가포르와 일본 영국 홍콩 등 선진국에서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통합돌봄) 차원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 서울시와 인구 규모, 지리적 상황이 비슷한 싱가포르 모델이 적합하다고 본다. 서울시와 커뮤니티병원의 개념 및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시행을 위한 부지와 사업비 확보 등에 대해선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추진 가능다고 보나.

“서울을 몇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별로 급성기 치료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병원과 공조 체제를 이루는 방식이 있다. 커뮤니티병원은 공공의료기관이 맡는 게 맞는다. 현행 수가 체계에선 커뮤니티병원 운영에 매년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책임지고 추진하려면 공공병원이 가장 적합하다.

서울시립 의료기관 중 급성기 종합병원 기능을 수행하는 보라매병원과 서울의료원을 중심으로 권역을 구성할 수 있다. 강북과 강남, 동부와 서부 등 2대 권역화를 하거나 강동-강서-강북-강남으로 4대 권역화를 할 수 있다.

커뮤니티병원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선 양질의 급성기 치료가 가능한 병원과 의료 인력 및 병원정보시스템(HIS) 등 동일 시스템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모델 수립을 위해 시범사업이 필요한데, 우수한 의료 인력과 급성기 진료의 질을 감안하면 초기 시범사업 기관으로 보라매병원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서울의 다른 시립병원 규모를 고려하면 커뮤니티병원을 운영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선 보라매병원에서 커뮤니티병원을 운영해 보며 올바른 모델을 수립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어떤 준비를 하나.

“커뮤니티병원 건립에 대한 타당성 조사는 완료했다.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향후 서울시와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병원 주변에 노인복지회관을 커뮤니티병원 부지로 검토하고 있으며 관련 지자체와 협의 중이다. 120~130병상이 가능하리라 본다. 향후 커뮤니티병원이 설립될 경우 서울시 차원의 건강돌봄네트워크 사업과 연계 추진할 계획이다. 환자들이 입원하면 필요한 의료복지서비스를 파악해 ‘맞춤형 연계’ 지원을 하는 것이다. 커뮤니티병원이 지역 복지기관과 보건소, 재가요양기관 등과 연계하게 되면 복지사각지대에 놓이는 걸 방지하고 지역사회 복귀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커뮤니티병원 모델이 성공하려면.

“적절한 보상과 인센티브 부여, 수가 개선 등이 제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충분한 의료의 질이 담보된 커뮤니티병원 모델이 정립된 후 지역 연계 시스템까지 확보된다면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도 완화할 것으로 생각된다.”

“싱가포르 선진 시스템 벤치마킹… 한국형 모델 만드는 게 중요”
전국 3개 권역에 커뮤니티병원 1곳
3~4개 급성기 병원과 클러스터 체계


커뮤니티병원의 선진 모델 중 하나로 싱가포르가 꼽힌다. 싱가포르는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통합돌봄)의 일환으로 커뮤니티병원이 잘 구축돼 있다.

싱가포르는 전국을 3개 권역(서부·중부·동부)으로 나눠 각 권역 내에 3~4개의 급성기 종합병원과 1곳의 커뮤니티병원이 연계하는 클러스터(군집)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은 16일 “커뮤니티병원은 대부분 공공병원이며 대형 급성기 병원을 모병원으로 두고 모병원의 의료진이 커뮤니티병원 환자를 진료한다. 동일한 전산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진료 연계가 원활하다”고 설명했다.

급성기 병원은 급성기 질환 치료, 커뮤니티병원은 회복기 재활 치료로 역할 구분을 명확히 하되 환자 전원을 위한 교류는 긴밀하게 유지한다. 또 커뮤니티케어 클러스터 체계는 가정 방문, 재가 지원 등 유관 서비스와의 연계로 확장돼 보건소 및 복지센터 등과 공조하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원장은 “싱가포르 커뮤니티병원 모델은 별도의 수가 체계와 시설 기준이 존재한다. 지역 의료복지체계와 연계가 잘되는 것도 특징”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2017~19년 싱가포르 커뮤니티병원 운영 상황을 직접 둘러봤다. 그는 “다만 싱가포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책 추진이 가능했다. 우리나라와는 사회구조와 의료체계가 달라 개념을 벤치마킹하더라도 결국 우리에게 맞는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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