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국민연금을 지키려면

이영미 2023. 10. 1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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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590만원을 받는 53세 직장인 A씨와 월수입 280만원의 33세 프리랜서 B씨가 있다고 해보자.

최근 논의된 국민연금 개혁 유력안(보험료 15% 인상)을 적용하면 A씨 보험료는 월 26만5500원에서 44만2500원, B씨는 25만2000원에서 42만원으로 오른다.

우선 출산·군복무 크레디트라는 이름으로 미래 정부에 떠넘긴 체납 보험료부터 갚고, 수천억원대인 국민연금공단 관리운영비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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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월급 590만원을 받는 53세 직장인 A씨와 월수입 280만원의 33세 프리랜서 B씨가 있다고 해보자. 최근 논의된 국민연금 개혁 유력안(보험료 15% 인상)을 적용하면 A씨 보험료는 월 26만5500원에서 44만2500원, B씨는 25만2000원에서 42만원으로 오른다. 동일한 부담 같지만 계산값은 다르다. A씨 부담은 예상보다 작고, B씨는 훨씬 크다. 보험료는 2025년부터 0.6%씩 10년간 올리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퇴직을 몇 년 앞둔 50대 직장가입자 A씨는 55세부터 5년간 보험료 600여만원만 추가로 내면 되지만, 젊은 지역가입자 B씨는 35세부터 25년간 4000만원 넘게 더 부담해야 한다.

지난달 공개된 국민연금 개편 시나리오는 가입자가 보험료를 더 내고 더 늦게, 결국은 더 적게 받자는 데 맞춰져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세대가 희생하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보고서가 염두에 둔, 희생하는 현세대와 혜택받는 미래 세대는 누구일까. 따져볼 대목이다.

만약 40·50대가 20·30대를 위해 희생하는 거라고 해석한다면 착각이다. 지금 보험료를 올리면 그 짐 대부분은 현재 청년층 어깨로 간다. 그중에서도 취약한 이들, 보험료 절반을 내줄 사업주가 없는 프리랜서와 배달기사, 1인 자영업자 같은 불안정 노동계층이 가장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반면 50대 직장인 상당수는 빠져나간다. 보험료를 올린다 한들 추가 부담은 소액이고, 지급을 늦춰도 다수는 해당조차 되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고갈되는 기금 역시 현실이다. 하지만 보험료를 낼 가입자 수가 줄어드니 액수를 올려서 총액을 맞추자는 식의 뻔한 산수가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고서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자로서 나는 그런 해법에 반대한다. 유럽의 높은 보험료율을 말하지만 직장가입자 비율이 높은 나라들이다. 국민연금은 다르다. 지역가입자가 30%나 된다. 이들에게는 보험료 인상의 충격을 흡수할 고용주가 없다. 보험료가 갑자기 오르면 간신히 버텨온 저소득 지역가입자들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최소 수백만명이다. 그렇게 진짜 보호해야 할 약자를 죄다 버린 채 국민연금 기금만 2093년까지 통통하게 살려놓은들 무슨 소용인가.

해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가 돈을 쓰면 된다. 건강보험에 지원하듯 국민연금에도 매년 일정액을 기금에 넣으면 된다. 공무원·군인연금에 연 10조원(내년 예산안 기준) 넘게 쓰면서 국민연금이라고 달리 대우할 이유가 없다. 우선 출산·군복무 크레디트라는 이름으로 미래 정부에 떠넘긴 체납 보험료부터 갚고, 수천억원대인 국민연금공단 관리운영비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요율을 올리되 지역가입자 보험료 절반을 정부가 내줄 수도 있고, 일부 전문가 주장처럼 기초연금을 보편 지급하고 국민연금을 소득비례 연금으로 재편하는 걸 논의해볼 수도 있다. 정부 곳간과 함께 열릴 선택지들이다.

보험료든 세금이든 결국 국민 부담이라고들 말한다. 절반만 맞는 얘기다. 국민이라는 모호한 단어로는 분배의 디테일을 설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료는 근로 및 사업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반면 세금은 부동산·금융·소비·기업 활동에까지 부과된다. 연금에 세금을 쓴다는 건 부유한 은퇴자 자산도 세금을 통해 청년의 노후를 위해 쓰일 수 있고, 또 쓰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야 공정하다.

게다가 국부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시대 아닌가. 월급쟁이에게만 의존하는 연금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내놓은 시나리오의 행간에서 내가 읽은 진짜 메시지는 그것이다. 노후보장 책임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연금을 지킬 수 있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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