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의 이코노믹스] 진영 간 기술패권 경쟁으로 치닫는 ‘탈탄소 클린테크’
글로벌 저탄소 경제 전환의 이면
그러나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은 미지근했다. 각국의 기후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9월 유엔이 개최한 ‘기후 목표 정상회의’는 별다른 합의 없이 끝나 버렸다. 오는 11월 두바이에서 개최될 제28차 기후변화총회(COP28)에서 어떤 성과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2050년까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0’(넷제로)으로 만들자는 저탄소 경제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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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팬데믹에 화석연료 증가
탄소감축 인류 공동대응에 균열
중, 개도국 저탄소 개발 지원
미, IRA 등 디커플링으로 맞서
탄소가격제 확산에 통상 급변
탄소배출 줄여야 경쟁력 유지
」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다. 그러는 사이 지구온난화는 가속이 붙고 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유엔(UN)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올해에는 1.5도 이상 상승 가능성을 66%로 보았다.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면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다.
내연기관 퇴출 속도 조절론 나와
범지구적인 탄소 저감 노력이 현실정치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크다.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막히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화석연료 확보전이 펼쳐졌다. 게다가 세계 경제가 코로나 봉쇄에서 벗어나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 전쟁의 여파로 고금리와 고물가가 지속하면서 기후대응의 핵심인 청정에너지 개발도 역풍을 맞았다. 세계 1위 해상풍력발전 개발회사인 덴마크의 오스테드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포기를 시사하는 등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잇달아 중단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2030년경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퇴출한다는 계획에 대해 ‘속도 조절론’이 분출하고 있다. 지난 9월 20일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 시점을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비싼 전기차 가격, 부족한 충전 인프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내년에 재선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보급계획을 늦출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에 일자리 불안을 느끼는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다.
일부 기업과 투자자들의 반 기후적 행태도 저탄소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워런 버핏은 석유회사 셰브론에 무려 33조원을 투자했다. 한때 ESG 투자의 옹호자로 칭송받던 세계 최대 투자회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2022년 5월 “과도한 기후대책은 고객사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며 사실상 변절한 것도 뼈아프다.
저탄소 경제에 대한 가장 큰 저항세력은 개발도상국들이다. 국제사회는 2015년 12월 개도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파리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대체로 미온적이다. 지구온난화에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에 탈(脫)탄소 비용지원을 요구하며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경제개발을 당장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탄소 배출국인 인도는 유엔의 2050년 탄소 넷제로 목표보다 훨씬 늦은 2070년에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개도국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패권 다툼이 된 미·중 탄소 감축 전략
이처럼 탄소 감축을 위한 인류적 공동 대응에 균열이 생겼지만 ‘클린테크’를 둘러싼 진영 간 지정학적 경쟁은 오히려 심화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2020년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 탄소 배출국이면서 동시에 태양광 및 풍력 발전기 소재·부품, 전기차 배터리와 소재, 관련 희귀광물 등 클린테크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막강한 클린테크 역량을 통해 중국은 전 세계에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은 152개국의 에너지 프로젝트에 160조 달러를 투자했고, 그중 80%는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였다. 그러던 중국이 2021년부터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개도국들의 저탄소 청정에너지 개발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개도국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미국을 압도한다.
중국의 클린테크 영향력 확장에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전기차의 자국 내 생산과 중국으로부터의 배터리 부품 및 소재 공급 차단, 전기차의 자국 내 생산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그런 예다. 이처럼 기후대응이 패권 경쟁으로 변질하는 가운데 세계는 비용의 낭비와 중복투자, 효율성 저하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 저탄소 경제는 기후문제에 대한 인류적 공동대응이라는 이상(理想)보다는 클린테크 공급망에서의 탈중국과 지정학적 경쟁에서의 승리를 우선시하는 현실정치에 의해 이끌려갈 공산이 크다.
■ 클린테크(Cleantech)
「 환경친화적인 청정기술과 공정, 관행, 산업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 1990년대 말부터 미국 벤처 투자업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올해 5월 정부가 태양광, 풍력, 수소공급, 무탄소 신전원, 전력저장, 탄소포집 기술(CCUS), 원자력 등 17개 부문을 대상으로 발표한 ‘한국형 탄소중립 100대 핵심기술’은 한국판 클린테크라 할 수 있다.
」
49개 나라에서 탄소가격제 운용
저탄소 경제의 또 다른 전개 양상은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의 확산이다. 탄소가격제는 탄소를 배출한 만큼 돈을 내게 하는 제도다. 탄소가격제에는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가 있다.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들에 배출권을 할당하여 할당범위 내에서만 배출행위를 하도록 하고, 실제 배출량의 과부족분을 거래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세계 최대 배출권 시장을 운용하는 유럽연합(EU)을 비롯해 한국, 스위스, 영국, 뉴질랜드, 미국, 중국, 캐나다, 일본 등이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배출권 거래제를 운용 중이다.
한편 탄소세는 배출한 탄소량에 바로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1990년 핀란드가 탄소세를 처음 도입한 이래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프랑스, 독일, 일본, 멕시코, 폴란드, 싱가포르, 남아공, 우루과이 등이 이를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현재 어떤 형태로든 탄소가격제를 운용하는 국가가 49개국, 탄소가격제 도입을 고려하는 국가가 23개국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국가가 탄소 비용을 자국 기업에만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EU가 올해 10월부터 EU로 수입되는 시멘트, 전기, 비료, 철 및 철강제품, 알루미늄과 수소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탄소 비용 부과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탄소 비용이 적은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탄소누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EU 수입자는 수입한 상품의 내재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매입하여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다만 원산지국에서 이미 지불된 탄소 가격이 있다면 해당 가격만큼 매입할 인증서 금액에서 차감해준다. 2025년 말까지는 내재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만을 부과하는 전환 기간이지만, 2026년부터 대상 제품의 EU 수출가격은 탄소 가격 차이만큼 높아지게 된다.
온실가스 감축, 한국 산업 당면 과제
이러한 탄소국경조치는 탄소가격제를 시행하는 다른 선진국들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기업들은 제품가격에 탄소 비용을 포함해야 하고, 해외에 제품을 수출할 때는 자국과 수입국간 탄소 가격 차이만큼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일반화될 것이다.
무역의존도와 탄소집약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이와 같은 지정학적 경쟁과 탄소가격제 확산은 거대한 통상 파고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철강,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제품이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 수준이고, 1인당 배출량은 일본 및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보다 높다. 생산 전력 중 석탄 발전 비중이 40%에 달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 내외로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엔 큰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결국 우리가 클린테크를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과 밀려오는 통상 파고를 극복하려면 저탄소 기술혁신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제품 및 에너지의 생산과 운송, 유통, 판매의 전 과정에서 탈탄소를 가능케 하는 기술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찾아야 한다.
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 연구원, 상임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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