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미 채권시장 불안 신호 두 가지: 가격 급락, 수요 부족
글로벌 금리의 사실상 기준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만기 수익률)가 연 4.8% 선까지 치솟았다. 조만간 5% 선을 넘을 듯했다. 그런데 최근엔 4.6% 수준까지 내려왔다(국채 시세 반등). 글로벌 머니가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을 계기로 미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몰린 탓이다. 금리만을 보면 고금리 압박이 일단 진정된 셈이다.
그런데 금리가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부인 미 국채시장을 거울처럼 보여주는지는 늘 논란거리다. 금리는 채권을 파는 쪽(미 정부)의 부담을 보여주는 지표다. 반면에 채권을 사는 쪽, 달리 말해 돈을 빌려주는 쪽(채권자)의 심리나 자금사정 등은 잘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에 대해 물가 등 경제지표 문제점을 지적해온 폴 도노번 UBS에셋매니지먼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채권 가격이 아니라 금리를 온도계로 삼아온 오랜 관행이 낳은 착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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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국채 30년물 경매수요 줄어
18% 안 팔려 도매상이 떠안아
최근 금리하락은 일시적 현상
시장발 긴축 본격화할 가능성
」
도노번이 말한 착시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주 발생했다. 이달 12일 미 재무부가 30년 만기 국채 200억 달러(약 27조원)를 경매(발행)에 내놓았다. 이 경매시장엔 참여자가 제한돼 있다. 주요 시중은행 등 ‘프라이머리 딜러(PD)’로 불리는 선수들만이 거래할 수 있다. PD들은 채권 펀드 등의 선주문을 받은 뒤 경매에 참여한다.
그런데 이날 경매에서는 안전자산 수요가 늘었는데도 선주문이 부족했다. 재무부가 내놓은 200억 달러의 18%인 36억 달러어치 국채가 팔리지 않아 도매상(PD) 창고에 남았다. 재고 비율은 평균(9~10%)보다 상당히 높다. 그 바람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옐런이 국채를 팔아 뭉칫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채권 투자 손실은 이미 눈덩이
미 국채 선주문(수요)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투자자의 손실 급증이다. 이는 금리 변동으론 쉽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월가 사람들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운용하는 미 국채 ETF(상장지수펀드) 가격을 주시한다. 미 국채 투자 수익이나 손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서다.
만기가 7~10년 뒤에 도달하는 미 국채 가격의 등락을 따라가도록 설정된 iShares ETF을 보면 투자자들은 고점인 2020년 7월 기준으로 24%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 손실의 대부분이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난해 3월 이후 발생했다.
그런데 만기가 20년 이상 남은 미 국채의 투자 손실은 더 크다. 미 국채 가운데 만기가 20년 이상 남은 채권 가격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설계된 iShares ETF의 가격은 고점인 2020년 7월 26일에서 46.5% 정도 추락했다(그래프 참조). 이 ETF를 산 사람은 투자 원금 가운데 절반 가까이 날린 셈이다. 이런 투자손실은 채권시장 금리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주식 등 위험자산의 투자손실이 단기간에 20% 이상 되는 일이 드물다. 월가 사람들이 주가가 고점에서 20% 이상 떨어지면 ‘침체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반면에 미 국채는 안전자산의 대명사다. 이런 자산의 투자 손실이 위험자산인 주식을 기준으로 분류한 침체장에 해당할 만큼 불어난 셈이다. 그 바람에 월가 일부에선 요즘 미 국채를 닷컴주에 비유하기도 한다. 닷컴 주가가 추락했을 때 평균 손실이 49% 정도였는데, 미 장기채(20년 이상) 투자 손실이 46% 수준이어서다.
최대 피해자는 미국 시중은행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시중은행과 채권형 펀드, 보험회사, 연기금, 해외 정부 등이다. 이 가운데 채권 투자 손실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바로 시중은행이다. 미 시중은행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분기별로 손실을 보고한다. FDIC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올해 2분기 ‘미실현 손실(unrealized losses)’이 5580억 달러(약 754조원)에 이른다. 미실현 손실은 채권가격 변동을 하루하루 반영하는 탓에 나타난 장부상 손해다.
미 존스홉킨스대 스티브 행키 교수(경제학)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최근 발생한 미 국채가격 하락은 2분기 데이터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미 시중은행의 미실현 손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Fed가 물가가 한참 오른 뒤 뒤늦게 허겁지겁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국채 가격이 급락해 시중은행이 궁지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행키 교수가 지적한 시중은행 피해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Fed 긴축 이후 국채 가격 하락이 낳은 손실이다. 두 번째는 금리상승 때문에 발생한 예금 이탈이다. 제로금리 시대에 예치한 돈이 고금리 시대가 열리자 대거 빠져나갔다. 씨티와 JP모건, BofA, 웰스파고 등 미 4대 은행에서 최근 1년 새에 빠져나간 예금이 2600억 달러에 이른다. 중소 시중은행에선 더 많은 돈이 빠져나갔다.
이제는 시장발 긴축을 주목해야
미 시중은행의 손실이 더 늘어나고 예금이 빠져나갈수록 국채 수요는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는 곧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Fed가 시작한 긴축이 금융 메커니즘을 거치면서 시장발 긴축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물론 월가 일부는 국채 가격 하락이 새로운 투자 수요를 불어 금리 상승이 억제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가격이 급락하면 투자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Fed가 월가의 예상대로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정도 더 올리면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 흐름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로 내려간 미 국채금리에 안도하기는 아직 이른 셈이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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